[시장 못 이기는 정부-부동산 정책 실패] 되레 집값 올린 규제...'인위개입'으로 버블키운 참여정부 데자뷔

강남·다주택자, 약발 안먹히고 실수요자만 전전긍긍
분양가 규제는 '로또 아파트' 양산...대책마다 빗나가
盧정부도 종부세 등 10여차례 대책에도 집값 못잡아
보유세 인상 등은 일시 효과...과감한 공급정책 필요

지난 2000년대 초반 은행에서 명예퇴직한 김모씨는 이후 아파트와 주식 등에 투자해 은퇴자금을 굴리고 있다. 초기에는 수도권 아파트와 서울 강북 지역의 소형 아파트에 투자했으나 이제는 한강변 남쪽의 아파트만 여러 채를 보유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보유세 강화 등의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김씨의 믿음은 확고하다. 그는 “사람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 지금보다 더한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올랐다는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정부의 말을 믿고 집을 안 샀거나 집을 판 사람들이 얼마나 후회막급이었는지 참여정부 출신인 현 정부 사람들만 모르는 듯하다”면서 “김수현(청와대 사회수석)씨가 2011년 ‘부동산은 끝났다’는 책을 썼는데 그 이후 부동산 시장은 어땠는가. 현장의 수요와 공급은 무시한 이념에 사로잡힌 정책의 결과를 아는 사람들은 이번 정부 정책 역시 신뢰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주택시장의 과열을 잡으려는 정부의 고강도 정책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후 8개월여 동안 다섯 차례나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지만 강남 등을 중심으로 한 서울 집값의 상승세는 꺾이기는커녕 오히려 불이 붙었다. 인위적인 규제는 ‘불길’에 부채질하는 격이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실제 새해 첫주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1월 첫째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0.33%로 집계됐다. 강남 3구를 중심으로 한 재건축 아파트가 0.74% 올라 집값 상승을 주도했다.

강남과 다주택자를 겨냥한 정책은 약발도 없을뿐더러 실수요자가 오히려 집을 사기 어려워지는 등 각종 부작용까지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8·2부동산대책으로 대출규제가 강화되면서 자금여력이 부족한 실수요자들의 주택 구매는 더욱 어렵게 됐다. 서울의 경우 전용면적 85㎡ 이하 중소형은 100% 청약가점제가 도입되면서 청약가점이 낮은 30~40대 세대주의 당첨 확률이 크게 낮아졌다.

7일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 공인중개사무소에 매물정보가 게시돼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취임 후 다섯 차례에 걸쳐 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지만 새해 첫주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지방 집값만 떨어지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분양가 통제에 나서면서 ‘로또 아파트’가 양산됐다. 지난해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서 분양한 ‘신반포 센트럴자이’는 전용 84㎡의 경우 분양가가 15억원에 달했지만 평균 경쟁률이 168대1을 기록했다. 주변 시세 대비 저렴한 분양가에 나오자 투자자들이 대거 몰렸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같은 로또 아파트 당첨 기회는 자금여력이 있는 일부에게만 돌아갔다. 대기업에 다니는 40대 김정은(가명)씨는 “은행 대출이 크게 줄면서 현금이 많은 ‘금수저’들만 서울 요지에 아파트를 살 수 있게 됐다”며 “초기 목돈이 적게 드는 아파트 분양을 노리려고 해도 인기 지역은 청약가점이 부족해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시장 대책과 시장 반응만 놓고 보면 참여정부 시절과 판박이다.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 정책을 주도했던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은 노무현 정부 시절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현재까지 결과는 비슷하다. 참여정부 시절 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잡기 위해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 강력한 부동산 정책을 10여차례 이상 쏟아냈지만 결국 주택 가격을 잡는 데 실패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참여정부 출범 초기인 2003년 2월 서울 강남 주택매매가격지수는 63.4를 기록했으나 정권 말기인 2008년 2월에는 95.9를 기록해 51.3% 상승했다. 이는 김영삼 정부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집값 상승률이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예고된 결과로 보고 있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 모두 다주택자를 집값 상승 주범으로 보고 이를 겨냥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풍부한 시중 유동성과 공급 부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다주택자들이 지방이나 수도권 외곽에 있는 주택을 처분하고 강남을 비롯한 핵심지역으로 몰렸다. 정부가 이 지역들을 ‘버블세븐’으로 명명하며 거품을 경고했지만 시장에서는 오히려 투자자들이 몰리는 ‘알짜 지역’으로 받아들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도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자 돈이 되는 강남 지역에 위치한 ‘똘똘한 한 채’에 집중하면서 오히려 강남권 아파트가 급등하고 있다.

게다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를 무력화시키려는 정부 정책은 오히려 ‘강남 8학군’ 집값을 띄우며 정책 엇박자를 내고 있다.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강남 학교를 배정받기 위해 강남에 진입하려는 수요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부동산 대책의 핵심은 공급인데 이번 정부에서도 공급 대책은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재개발·재건축을 통해 주택을 공급해야 하지만 서울에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부활, 분양가상한제 실시 등의 규제책을 시행하면서 향후 정비사업을 통한 공급물량 감소가 예상된다. 강남을 비롯한 서울의 주택 가격이 더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보유세 인상으로 매물이 나오면서 일시적으로 주택 가격이 하락하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지만 강남은 수요가 꾸준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결국 오를 수밖에 없다”며 “집값 급등을 막기 위해서는 공급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분양가상한제 역시 공급이 충분한 상황에서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지만 지금과 같이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로또 청약과 같은 문제를 야기할 뿐이다. 공급 확대를 간과하면 ‘참여정부 시즌2’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고병기·이혜진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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