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제로레이팅(Zero Rating)’ 활성화 속내를 내비치면서 게임이나 웹툰 등을 서비스하는 콘텐츠 업체들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제로레이팅이란 콘텐츠 이용에 따른 데이터 비용을 콘텐츠 제공업체나 이통사가 대신 부담하는 것으로 이통사들은 현재도 자사나 제휴 업체의 콘텐츠를 제로레이팅 형태로 제공하며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콘텐츠 기반 스타트업들은 자신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은 물론 결국 ‘망중립성’까지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로레이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9일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 따르면 황창규 KT(030200) 회장은 지난 5일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5G 시대로 가면 소비자의 동영상 데이터 이용량이 폭증하기 때문에 통신비 부담이 커지지 않도록 제로레이팅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정호 SK텔레콤(017670) 사장과 권영수 LG유플러스(032640) 부회장도 같은 자리에서 황 회장과 비슷한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통사들은 현재 자체 서비스 중 일부를 제로레이팅 형태로 제공하며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SK텔레콤의 경우 모바일 내비게이션 서비스 ‘T맵’과 오픈마켓 서비스인 ‘11번가’를 제로레이팅 형태로 제공하며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KT와 LG유플러스는 모바일 내비게이션 서비스 ‘원내비’를 비롯해 양사가 지분을 공동 보유한 ‘지니뮤직’ 연계 상품을 제로레이팅 형태로 제공하며 통신부분에서의 영향력을 기반으로 콘텐츠 부문 시장 점유율을 강화하고 있다. 외부 업체와의 제휴도 확대 중이다. SK텔레콤은 모바일 게임인 ‘포켓몬고’를 제로레이팅 형태로 제공해 지난해 3월부터 8개월 동안 총 215TB(테라바이트)의 데이터를 무료로 제공했으며 LG유플러스는 지난해 G마켓과 제로레이팅 관련 제휴를 맺고 이용자 데이터 부담을 낮춘 바 있다.
스타트업을 비롯한 콘텐츠 업체들은 제로레이팅 확산이 시장 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입장이다. 한 콘텐츠 서비스 업체 관계자는 “이통사가 제로레이팅 제휴 업체를 늘려갈수록 데이터 이용료 부담을 감당할 수 없는 영세 콘텐츠 제공 업체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며 “제로레이팅이 활성화 되면 콘텐츠 제공사업자 간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망중립성 훼손 문제까지도 연결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인터넷 기업협회 관계자 또한 “지난해 제로레이팅 실태를 조사해 보니 관련 사례의 60% 정도가 통신사 자체 서비스를 위한 것으로 나타나 공정거래 측면에서 적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무엇보다 제로레이팅은 콘텐츠 제공업체의 원가 부담을 높여 결국 이용자에게 비용부담이 전가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요금 인하효과가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반면 과기정통부는 제로레이팅이 통신요금 절감이라는 긍정적 측면도 있는 만큼 관련 이슈를 업계 자율에 맡기겠다는 입장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제로레이팅에 대해서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 추후 대응하는 ‘사후규제’ 방식으로 접근할 계획이라 이통사들은 자유롭게 서비스를 출시하면 된다”고 밝혔다.
반면 이통사들은 제로레이팅 확대를 공개적으로 추진할 경우 공공재인 주파수를 사용하는 규제산업의 특성상 자칫 망중립성 훼손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제로레이팅에 대해서는 정부가 확실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줘서 문제가 없도록 해 주길 바라는 것이 이통사들의 속내”라며 “겉으로는 제로레이팅 확대를 외치지만 누군가 총대를 메주길 바라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