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정말 소처럼 일했다”고 지난 해를 돌아 본 박정민은 “쉼 없이 일을 하다 보니 늘 불안해지고...그래서 고비가 왔었다”고 털어놨다.
박정민이 대중의 폭 넓은 관심을 받게 된 작품은 영화 ‘동주’, 그는 지난 2016년 이준익 감독의 ‘동주’에서 윤동주 시인의 사촌이자 독립운동가 송몽규 역을 맡아 청룡영화상을 비롯한 백상예술대상 등 그해 주요 신인연기상을 휩쓸었다.
/사진=조은정 기자
박정민이 느끼는 ‘고비’의 시점은 2017년 10월이었다고 한다. 당시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을 찍고 있었을 때다. 또한 ‘염력’에 이어 ‘변산’ 촬영도 스타트가 됐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스케줄도 문제였지만 상업영화의 주인공이란 책임감과 부담감이 컸다고 했다. 그는 “저 혼자 땅굴을 파고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몸이 좀 안 좋아졌다.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그런 고비의 순간이었다”고 표현했다.
흔들리는 박정민을 붙잡아 준 건 ‘변산’의 이준익 감독과 황정민 배우다. “잘 하고 있으니 너무 불안해 하지 마라”란 한마디는 그렇게 박정민에게 힘이 됐다. 특히나 ‘변산’은 전 회차에 박정민이 나올 정도로 원톱 주인공 영화이다. 그는 “이준익 감독님이 아니었으면 병원 신세를 질 정도였다”고 사태의 심각성을 전했다.
배우가 전 회차에 나온다는 책임감과 불안감은 박정민을 더더욱 예민해지게 만들었다. 도통 되는 일이 하나 없는 무명 래퍼 ‘학수’역을 맡은 그는 랩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사도 직접 쓰는 인물이다고 설명했다. 배우가 이것 저것 소화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았다. 촬영 현장에서 배우가 이전과 다르다는 걸 감지한 이준익 감독은 자연스럽게 밤 낚시를 함께 가자고 권했다.
“현장에서 예민해하고 밤마다 힘들어했다. 촬영 현장에선 우는 신에서 너무 운다고 할까. 감독님이 이상한 걸 감지하시고 되게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방파제에서 밤 낚시를 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열심히 잘 하고 있다고 말 해주시고, 지금까지 신도 잘 나왔다. 낚시나 하자고 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 때 되게 힐링의 시간을 갖게 해주셨다. 감독님 자체가 이번 작품을 하면서 너무 행복해하시는 모습도 좋아서 내가 누를 끼치면 안 되겠다 싶어서 힘을 냈다. 특히나 제가 믿고 의지하는 분이 마음 놓고 해라고 말해주니까 힘이 됐던 것 같다.”
■ 박정민을 일어서게 한 은인...이준익 감독· 황정민 배우의 따뜻한 한마디
이준익 감독에 이어 같은 소속사 ‘샘 컴퍼니’ 선배인 황정민 배우의 따뜻한 배려심도 그에게 큰 힘이 됐다. ‘황정민 선배님이 살려주셨죠.’라고 말한 그의 표정에선 깊은 신뢰감을 엿볼 수 있었다.
“어느 날 정민이 형이 전화를 하셔서 ‘많이 힘드냐’ 고 물어보셨다. 정민형이 회사의 대표님 같은 분이다. 그런데 소속배우에게 ‘쉬고 싶으면 쉬어라.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란 말을 해주셨다.
소속사 대표가 아닌, 정말 선배 배우로서 자기 경험에 비추어 조언을 꼼꼼하게 해주셨다. 난 ‘와이키키브라더스’로 데뷔해서 지금까지 연기 해왔다. 자신이 나왔던 작품 이야기를 하나 하나 해 주시면서, 넌 나보다 훨씬 빠르게 잘 하고 있다고 말해주셨다. 넌 이렇게 잘 하고 있고 회사에 형이 있는데 뭐가 문제냐? 고 말하는 데 약간 눈물 날 것 같았다. 형이 과한 부담감이나 책임감 지면서 힘들어하지 말라. 배우가 길게 가야 한다고 말하는데, 의지가 되면서 그 사점이 무너질 수도 있는 순간을 넘겼다. “
그렇게 박정민은 연기의 재미를 다시 찾았다. 그는 “내가 연기를 하면서 재미있어했던 걸 찾았다. ‘변산’ 이 끝나고 ‘사바하’ 끝나고 되게 오래 쉬려고 마음 먹기도 했는데, 지금은 쉬어서 뭐하나는 생각도 들고,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며 밝게 웃었다.
연기력에 있어서 깊은 신뢰감을 갖게 하는 배우 박정민. 그는 17일 개봉하는 ‘그것만이 내 세상’의 진태로 관객을 만난다.
‘그것만이 내 세상’은 주먹만 믿고 살아온 한물간 전직 복서 조하와 엄마만 믿고 살아온 서번트증후군 동생 진태, 살아온 곳도 잘하는 일도 좋아하는 것도 다른 두 형제가 난생처음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이번 작품에서 박정민은 말투와 표정, 손동작 하나하나에도 섬세함을 기해 서번트 증후군의 특징을 담아냈다. 특히 피아노 천재 진태를 위해 6개월간 엄청난 연습을 거쳐 피아노 연주까지 직접 소화해 내는 노력을 보였다.
박정민이 이번 작품에 임하면서 우선 순위에 둔 건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지만 자기 세상을 살고, 살아가고자 하는 분들인데 그분들에 대한 존중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번 영화를 하면서 특수학교에서 직접 봉사활동까지 한 박정민은 “그 가족 분들이나 복지사 분들이 영화를 봤을 때 불쾌하지 않아야겠다는 게 내 첫 번째 원칙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연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서번트 증후군’ 선을 넘지 않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지만, 맞는 것과 틀린 것에 대한 기준이 없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검수를 받을 수도 없는 역이었다. 현장에서 여러 가지 하면서 맞춰나갔다. 초반엔 의욕이 앞서서 과하게 나온 것도 있었다. 그래서 초반 성당 장면은 다시 찍기도 했다.”
언론 시사회 이후 박정민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그는 “기분은 좋은데, 불안하다”는 복잡한 심경을 밝혔다.
“안심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랄까. 그래서 불안하다. 누가 칭찬해주면 불안하고, 또 전 좋은 일이 생기면 불안한 게 있어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데, ‘백일몽’처럼 사라질 것 같거든요. 기분 좋은 게 언제 사라지지 않을까란 두려움. 기분은 좋은데 이 좋은 기분을 더 유지하고 싶은 마음. 그래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하나봐요. 그게 배우 본능 아닐까요.”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