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 인형을 들고 질문을 청하고 있다./연합뉴스
“양손을 모두 든 분도 있고 인형을 들고 온 분도 있고 눈도 안 마주쳤는데 몸부터 일어나신 분도 계셨습니다.”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질문권을 얻기 위한 기자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 눈길을 끌었다. 사전에 질문자를 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질의응답이 오가는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질문을 받을 때마다 200여명의 기자가 사방에서 손을 들어 올렸다.
사회를 맡은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대통령이 손으로 지명하고 눈을 마지막으로 맞춘 기자에게 질문권이 주어진다”며 “나도 눈 맞췄다며 일방적으로 일어나시면 곤란하다”고 설명해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그야말로 백악관 스타일이다.
기자들은 종이를 흔들거나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 인형을 드는 등 질문권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문 대통령이 첫 질문자를 선택하는 순간 기자회견장 곳곳에서 부러움의 탄성이 나왔다.
경쟁이 치열한 탓에 질문할 기회를 얻은 기자들은 “보라색 (옷을) 입고 나온 것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저랑 눈 마주친 것 맞죠 대통령님” 등 다양한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한 외신기자는 유창한 한국어로 자기 소개와 새해 인사를 마친 뒤 “지금부터 영어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해 웃음을 불러일으켰다.
문 대통령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기자들과 문답을 이어갔다.
한 기자가 한일 위안부 합의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등 여러 질문을 동시에 하자 “질문을 하나만 선택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해당 기자가 “대통령의 선택에 맡기겠다”고 대답하자 “위안부 할머니와 관련한 질문의 요지는 무엇이었나”라고 되묻기도 했다.
다른 기자가 “정부 정책에 비판적 기사를 쓰면 격한 표현과 함께 안 좋은 댓글들이 달린다”고 말했을 때는 문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저보다 많은 악플을 받은 정치인이 없을 것”이라며 “기자들도 담담하게 생각하고 너무 그렇게 예민하실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한다”고 답했다. 질의응답 모두 참석자들의 웃음을 이끌어냈지만 온라인상에서는 부적절한 질문이었다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이날 기자회견은 문 대통령의 회견문 발표와 질의응답을 포함해 총 1시간 24분 동안 진행됐다. 당초 1시간으로 예정됐던 질의응답은 열띤 경쟁 속에서 17번이나 진행된 후 마무리됐다.
문 대통령은 “질문 기회를 못 드린 분들께 죄송하다”며 “다음에는 오늘 질문을 못한 분들께 기회를 드리겠다”고 말했다.
회견장에는 가수 김동률의 ‘출발’과 윤도현의 ‘길’이 흘러나왔으며 회견이 모두 끝난 뒤에는 제이레빗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나왔다.
/권경원기자 na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