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고는 재능과 사람을 이어주는 새로운 개념의 O2O 서비스다. 출시 2년 만에 누적 거래액 200억 원을 돌파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혁신성에 주목한 글로벌 액셀러레이터의 선택을 받으며 해외 스타트업과의 탄탄한 네트워크도 구축했다. 국내외 스타트업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김로빈 숨고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 강남구에 마련된 숨고 사무실에서 김로빈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흔히 소설 속 무림의 고수들은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살아간다. 수 십 년간 무술을 연마한 후, 홀연히 나타나 ‘부모의 원수’를 제압하고 악의 무리로부터 세상을 지켜낸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한 무림의 고수는 또 다시 은둔 생활을 선택하며 자취를 감추곤 한다.
현실 세계에서 ‘무림의 고수’를 찾기란 어렵다. 하지만 특정 영역에서 꾸준히 역량을 축적한 전문가나 ‘고수’들은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무림의 고수와 현실 세계의 고수 사이에는 명확히 다른 점이 있다. 무림의 고수는 결코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 은둔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잘 먹고 잘 잔다. 모아둔 돈이 많아야만 ‘무림의 고수’가 될 수 있는 듯하다.
현실 세계의 고수들은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몇몇 고수들을 제외한 대다수 고수들은 안정된 일자리를 갖기 힘든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독보적인 실력을 갖춘 해외파 바이올리니스트도 막상 한국에 오면 개인 레슨 자리에 전전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기자가 아는 몇몇 영세 사진작가들도 소규모 사진 강의, 장비 대여 등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숨고는 이러한 전문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탄생한 플랫폼이다. 김로빈 숨고 대표에게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숨고는 ‘숨은 고수’의 약자입니다. 재능과 기술을 가진 소상공인과 프리랜서, 그리고 그들의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O2O(Online to Offline) 오픈마켓 플랫폼이죠. 저희는 24시간 내에 특정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들에게 필요한 레슨 고수를 찾아주고 있습니다. 고객들이 레슨 종류, 희망 지역, 시간, 예산 등 원하는 내용을 입력하면 해당 조건을 충족하는 고수가 레슨을 학생에게 역제안하는 방식이죠. 현재 영어나 중국어와 같은 외국어부터 스포츠, 미술, 공예, 음악, 공연 등 다양한 분야의 고수들이 우리 플랫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꽤 오래전부터 김로빈 대표에겐 숨고 사업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몇 년간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전혀 다른 분야에서 창업에 도전했다. 바로 ‘알지피코리아(RGP Korea)’였다.
숨고 사무실 내부 전경.
알지피코리아라는 이름은 독자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알지피코리아가 운영하고 있는 서비스를 들으면 이야기가 달라질 듯하다. 요기요, 배달통 같은 국내 1세대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개발·운영·서비스하고 있는 회사가 바로 알지피코리아다.
요기요는 배달의 민족과 함께 서비스 출시 당시부터 큰 화제를 불러왔던 O2O앱이다. 단순히 빠르게 큰 성공을 거뒀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음식 배달 서비스는 존재하고 있었다. 전화만 걸면 쉽게 배달 음식을 받아 먹을 수 있었다. 그런 서비스가 단순히 스마트폰에 들어와 ‘모바일 배달’이라는 엄청나게 큰 새로운 시장이 탄생시킨 것이었다.
김로빈 대표는 여기에 숨고 창업의 중요한 포인트가 녹아있다고 말했다. “결국 타이밍이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서비스라 해도 시대적 흐름과 타이밍을 읽지 못하고 시장에 나오면 사장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요기요가 당시보다 1년 전, 1년 후에 출시됐다면 아마도 지금 같은 성과를 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숨고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는 제가 숨고를 창업했던 2015년이 시장에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적기라고 봤습니다.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던 O2O 서비스 시장에 숨고 같은 플랫폼이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확신이 들었죠. 그런 확신과 믿음이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숨고가 출시될 무렵, 국내에는 청소, 세차 등의 특정 카테고리에서 고객을 이어주는 O2O 서비스가 활발하게 출시되고 있었다. 특정 영역에 한정된 서비스만이 존재하던 상황에서 모든 것을 아우르는 숨고 서비스는 단연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김로빈 대표의 예상은 적중했다. 숨고는 서비스 출시 이후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2015년 10월 런칭 이후 약 7개월 만에 누적 거래액 100억 원을 달성했고, 2017년 10월에는 누적 거래액 200억 원을 넘어섰다. 10여 개에 불과했던 서비스 역시 현재 550여 개로 증가해있다. 전체 가입자는 34만 여명(고수 약 7만 8,000명)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쯤 해서 간략하게 숨고의 서비스 방식을 살펴보자. 서비스를 원하는 소비자는 우선 숨고 플랫폼에서 원하는 분야와 시간, 장소 등의 조건을 입력한다. 그러면 의뢰 조건에 적합한 해당 고수(전문가)들이 각자 견적을 보낸다. 소비자는 1회 당 5개 견적을 받아 비교해볼 수 있다. 고수는 견적을 보낼 때마다 일정 금액(크레딧)을 지불해야 하지만, 소비자는 고수를 찾는 과정에서 전혀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소비자는 여러 전문가의 서비스 내용과 가격을 비교할 수 있고, 전문가는 본인의 상황에 맞는 서비스와 가격을 제안할 수 있다.
김 대표는 “당시는 오픈마켓 플랫폼, 음식 배달, 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O2O 서비스가 활용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며 “‘모든 분야의 사장님들을 성공으로 이끈다’는 목표로 출범한 숨고 역시 이러한 흐름을 타고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숨고의 시장 안착은 또 다른 새로운 기회를 가져왔다. 바로 해외시장 진출이었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진출’이라곤 할 수 없다. 하지만 해외시장에 숨고라는 서비스의 존재를 알린 것만으로도 김로빈 대표에겐 큰 의미일 수밖에 없었다.
김로빈 대표는 “2018년을 기점으로 숨고의 본격적인 성장드라이브가 시작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지난 2017년 3월, 국내 스타트업계에 놀라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바로 숨고의 미국 ‘와이콤비네이터(Y-Combinator)’ 입성이었다. 와이콤비네이터는 미국 실리콘밸리, 나아가 전세계 스타트업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엑셀러레이터(Accelerator·스타트업 투자 및 육성 기관)’다. 에어비앤비, 드롭박스, 코인베이스, 레딧 등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스타트업 상당수가 바로 와이콤비네이터 출신이다.
김 대표는 이후 미국 실리콘밸리 현지로 날아가 약 3개월 간 와이콤비네이터에서 제공하는 각종 멘토링 서비스와 교육을 받았다. 당시 경험은 김 대표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김로빈 대표는 말한다. “그곳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바로 ‘코어 밸류(Core Value)’였습니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핵심 가치’겠네요. 멘토들은 사업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창업 당시 생각했던 사업의 코어 밸류를 절대 놓쳐선 안 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코어 밸류를 놓치는 순간, 사업은 결국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고 말이죠. 그 때 저 스스로도 모르게 숨고의 핵심가치를 잊고 있었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더군요. 지금도 저는 종종 저희 구성원들에게 ‘코어 밸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초심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곤 합니다.”
김로빈 대표는 하루 빨리 2018년이 오길 학수고대하는 듯 보였다(인터뷰는 2017년 12월 중순에 진행됐다). 그동안은 숨고를 운영하고 안착시킬 수 있는 노하우를 배웠다면, 2018년은 숨고가 본격적인 성장드라이브를 달릴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잘 배웠다”고 말하며 웃음 짓던 김 대표는 이내 웃음기를 지우고 진지하게 향후 목표에 대해 말을 이었다. “2018년을 기점으로 숨고의 스케일업(Scale up·외형 성장)을 위해 달려볼까 합니다. 물론 성장의 근간에는 지난 3년 여간 고객들과 고수들이 함께 만들어온 숨고 만의 에코시스템이 존재합니다. 그동안 발견된 문제점을 개선하고, 장점은 키워나가면서 숨고 에코시스템의 원활한 성장을 이뤄낼 것입니다. 앞으로도 숨은 고수들의 맹활약을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