캅카스 지역에서 2년여 세월을 근무하면서 내게 언제나 화두였던 것은 문화와 전통 그리고 현대성의 상관관계였다. 캅카스 민족들이 수많은 외세의 침탈을 받아가면서도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아 이리도 당당히 나라를 다시 세운 저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캅카스 3국은 모두 작은 민족이어서 나라로 존재한 기간은 늘 짧았다. 아마도 그들 역사의 9할은 나라 없이 살아온 기간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따져봐도 이들 민족이 어려운 기간을 살아낸 힘은 문화에서 나오는 것 같다. 나라가 없어도 유구한 역사 속에서 꿋꿋이 지켜온 그들의 문화가 없었다면 어디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까. 가끔 이곳의 역사박물관이라도 들를라 치면 근원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유구한 그들의 역사에 놀라고는 한다. 캅카스를 방문할 기회가 있는 분들은 조지아의 역사박물관을 한 번쯤 방문해보시라. 그곳에는 지금으로부터 5,000~6,000년 전의 유물들이 즐비하게 전시돼 있을 것이다. 특히 손가락 마디만큼 조그마한 ‘황금사자상’을 들여다보노라면 그 세밀함에 숙연함을 느끼고는 한다. 이미 8,000여년 전 와인이 제작된 곳이니만큼 5,000~6,000년 전에 그런 찬란한 문화가 존재했다는 데 하등의 의심을 가질 이유가 없어 보인다.
이곳에 살다 보면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같은 문화 평등론자들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전통의 중요성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캅카스인들에게 전통문화는 진열장이나 공연장에 가둬두는 것이 아니라 나날의 생활에서 실천하는 것들이다. 내가 사는 아제르바이잔만 하더라도 우리가 잃어버린 아까운 전통이 그대로 남아 사회를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다. 서로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차별 없이 어울려 사는 모습은 전통적인 삶의 모습일 것이다. 돈의 위세에 눌려 재산의 많고 적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데 익숙한 우리들의 눈에는 얼마나 부러운 모습인지 모른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소중한 전통을 되살려 삶에 유익하게 활용하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것 같다. 글쓴이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이라면 한 번쯤 시간을 내 캅카스를 방문하시기 바란다. 아름다운 캅카스의 풍광 속에서 전통을 지켜가며 아름답게 살아가는 이들과 대화도 하고 마음도 나눠보자. 그러면 전통이 우리에게 얼마나 유익하게 작용하는지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김창규 주 아제르바이잔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