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년 후 가상화폐와 핀테크 기술이 바꿔 놓은 우리의 일상에선 지폐나 신용카드 따위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잔고가 바닥난 전자지갑에 신용 대출로 돈을 채워 넣으려면 왼발을 한 번 굴러 신발에 내장된 칩을 가동하기만 하면 된다. 이때 한 가지 의문이 들 법하다. 자동차나 냉장고, 신발이 제시카를 대신해 결제할 때 이들 사물이 제시카의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은행이나 결제기관 같은 제3의 보증기관이 없어도 되는 것일까. 답은 제시카 신분은 물론 그녀의 소유물 역시 블록체인에 기록돼 있다는 것이다. 제시카가 냉장고를 사는 즉시 제시카의 IP에 냉장고가 등록된다. 결국 블록체인은 화폐의 실현과 거래를 기록하는 시스템을 넘어, 소유권의 발생과 이전, 모든 가치의 이전을 기록하는 메커니즘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블록체인 기술이 혁신적인 것은 제3의 보증기관 없이 모든 사용자가 동일한 거래 장부를 보유하고 대조하는 것만으로 신뢰관계가 구축된다는 점이다.
이렇듯 돈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기성 금융기관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세계적인 핀테크 전문가 크리스 스키너의 ‘금융혁명 2030’은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뱅크는 사라지지만 뱅킹은 남는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대중의 관심밖에 있던 비트코인이 최근 한 달 사이 대다수 사람들의 밥상머리 대화를 지배할 만큼 최고의 화두로 떠올랐다. P2P(개인간 거래) 대출, 모바일 결제가 기존 은행과 신용카드사의 입지를 위협하고 가상화폐가 각국 신용통화는 물론 기축통화까지 대체할 것이라는 관측이 쏟아진다. 이처럼 격변하는 금융 환경은 기성 금융기관만의 고민은 아니다. 금융에 기대 삶을 영위하는 우리 모두의 고민거리다.
산업혁명과 인터넷혁명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꿨듯 우리 삶을 뒷받침하는 금융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모했다. 세계 무역과 상거래가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등장한 수표, 사무혁명기 접대문화가 형성되면서 등장한 신용카드와 마찬가지로 사물인터넷이 일상화되면 금융의 역할은 또 한 차례 격변할 것이다. 저자는 우리의 삶에서 실질적인 돈은 사라지고 모든 가치의 거래가 시스템에 기록되는 미래가 이르면 10년 후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2030년부터 본격화될 금융혁명의 핵심 키워드는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가치 웹’이다. 가치 웹이란 가치가 실시간, 무료에 가까운 비용으로 교환되는 네트워크로 핀테크와 블록체인, 모바일 기술은 가치 웹을 이루는 핵심기술이다. 10년 전만 해도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람은 10억 명이 채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70억 명이 모바일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이런 세상에서 시장을 이끌 차세대 금융의 조건은 네트워크 시대에 적합한 디지털 가치 교환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블로그의 글을 무료로 열람하는데 익숙하듯 네트워크 시대에는 누구도 거래에 비용을 치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모든 거래 단계에 수수료를 부과하며 수익을 높여온 은행의 영업 방식이 곧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책에서 다룬 전 세계 은행들의 발 빠른 대응은 국내 금융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크라이나의 프라밧뱅크는 고객이 구매한 제품을 가까운 은행 지점의 안전금고로 배달하고 고객이 마음에 들 경우에만 결제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물건을 구매할 때는 대출도 지원한다. 금융상품 자체가 아닌 부수적인 서비스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 브라질 방코오리지널의 사례도 흥미롭다. 이 은행은 링크드인과 페이스북의 인맥 정보, 포스팅, 좋아요 수 등을 확인해 신규고객의 직장과 신용도 등을 파악해 대출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특히 팔로워 수가 많은 SNS 빅마우스에게는 대출 이자를 깎아준다. 이들이 내는 입소문으로 신규고객이 창출된다는 논리다.
특히 신용평가 없이 빅데이터로 대출 승인 여부를 판단하는 대출 모델부터 개인 간 대출을 중계하는 P2P 대출 모델까지 다양한 핀테크가 등장하면서 낡은 은행 시스템에선 혜택을 받지 못했던 저신용자와 중소기업, 저개발국가의 국민들 역시 빠른 속도로 금융에 ‘포용’되고 있다. 변화에 보폭을 맞추지 못한 ‘뱅크’는 사라지겠지만 1세기 이상 은행이 담당해온 ‘뱅킹’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저자는 궁극적으로 은행이 금융기관에서, 데이터를 안전하게 저장해주는 디지털 가치 저장소로 진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기성 은행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은행이 됐든 신생 핀테크 기업이 됐든 모바일, 비트코인, 블록체인, 핀테크가 가져올 변화를 예측하고 한발 앞서 대응한 기업들이 금융혁명의 승자가 될 것이다. 1만6,000원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