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장/권욱기자
지난해 11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5대 그룹 최고경영자(CEO)와의 간담회를 가졌을 때 “정부의 노동정책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죽어난다. 정부가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다”며 과감하게 쓴소리를 내뱉는 사람이 있었다. 산업전문 관료에서 경제계의 목소리, 그리고 이제 민간경제연구원 수장으로 변신한 이동근(60·사진) 현대경제연구원장이다.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자리에서도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의견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첫마디부터 거침이 없었다. “너무 빠른 최저임금 인상은 사회적 약자들끼리 싸우게 만들 뿐입니다. 단계적이고 점진적 시행이 필요합니다.” 이 원장은 최근 논란이 끊이지 않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급속한 시행으로 결국 최저임금을 받던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기업 부담 증가로 신규 고용이 위축되면 실업률은 또 올라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고 우려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통상임금 확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기업이 추가적으로 져야 할 부담은 총 49조9,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 원장은 부동산 대책에 대해 “일단 시장에 맡겨놓는 것이 제일 좋고 강남 아파트에 대한 수요를 잡아주기 위해 서울, 특히 강남 4구 주변에 공급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해법을 내놓았다. 그는 정부가 쏟아낸 많은 대책들이 ‘현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를 파악하는 게 급선무라고 꼬집었다. 산업정책 전문가답게 과감한 규제개혁과 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신산업 위주의 구조 개편이 절실하지만 현 정부는 소수가 반대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 상황”이라며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규제개혁과 제도적 환경 조성에 있어서는 필요할 때 과감하게 결정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14일 현대경제연구원 집무실에서 이 원장을 만나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와 한국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대담=이현호 경제부 차장 hhlee@sedaily.com
최저임금 정책에 대해 이 원장은 ‘속도조절론’을 제시했다. 올해 1월1일부터 최저임금이 16.4% 인상된 후 영세 사업주는 물론 혜택을 누릴 것으로 예상됐던 저임금 근로자도 고용 감소, 수당 삭감 등의 부작용을 호소해 여기저기서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그는 “지나치게 빠른 최저임금 인상은 사회적 약자끼리의 자원 배분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 원장은 정부가 영세 사업주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3조원의 세금을 들여 지원하는 일자리안정자금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꼬집었다. “한 달에 13만원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반문이 따라붙었다.
결국 실제 이득을 보는 것은 외국인 근로자가 될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지역·업종은 물론 국적에 따라서도 최저임금 차별을 금지하고 있어 외국인 근로자도 똑같은 최저임금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캐나다·홍콩·싱가포르 등 많은 나라들이 비숙련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서는 자국민보다 낮은 최저임금을 지급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 원장은 “중소기업 현장에 가보면 외국인 근로자에게 숙식 제공을 포함해 200만원 가까이 주지만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한 4대 보험 비용까지 합해줘야 해 월급이 300만원을 훌쩍 넘는다”며 “그래도 소위 ‘3D업종’은 인력난이 심각하다 보니 외국인 근로자를 쓸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의 과실이 외국인 근로자에게 쏠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최저임금은 근로빈곤층 복지 확충을 위해 인상하는 것이 맞지만 만 2년 사이에 만원까지 올리겠다는 ‘속도’가 문제”라며 2004년 처음으로 시행된 주5일근무제를 예로 들었다. 그는 “당시 주5일제는 기업규모별로 7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됐다”며 “방향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점진적으로 가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빠른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근로자 복지를 강조하는 노동 정책이 현 정부의 고용창출 목표와 상충한다는 점도 문제다. 이 원장은 “정부가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지만 노동비용 증가, 신산업 규제, 기업 투자 위축 등으로 기업들이 고용을 늘리기 어려운 여건”이라고 말했다. “임금을 높여 소득-투자-고용 증가의 선순환을 이루자는 소득주도 성장이 현장에서는 생각만큼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해서도 고언을 쏟아냈다. 지난해부터 연이은 규제에도 강남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자 당정은 보유세 인상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그는 “어느 나라든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고 정부가 개입하는 순간 더 오른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라며 “정부가 이번에는 세금으로 잡겠다고 하지만 시장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강남 집값이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올해도 우리 경제가 3%대 성장을 이어갈 가능성은 낮다는 게 이 원장의 생각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2.8%로 전망했다. 지난해 3.2%, 올해 3.0%를 제시한 정부보다 낮은 수치다. 그는 “하반기에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되지 않는다면 3.0%는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숫자보다는 지난해보다 올해 성장세가 둔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전망에 대해 그는 투자 축소의 영향이 크다고 봤다.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삭감과 부동산 억제책에 따라 건설투자 증가율은 지난해 6.8%에서 1.0%로 쪼그라들고 설비투자도 지난해 14%의 3분의1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취업자 수 증가폭이 30만명을 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정부가 전망한 32만명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이 원장은 “지난해 취업자 수가 31만7,000명 늘었지만 뜯어보면 50대 이상의 고령자가 많았고 15~29세 청년층은 오히려 줄었다”며 “올해는 생산가능인구 감소, 노동비용 증가, 청년 일자리 미스매칭 심화로 취업자 수 증가폭이 더 줄고 청년실업률은 훨씬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산업정책 전문가인 이 원장은 ‘혁신성장’을 내건 현 정부의 성장정책 중 가장 시급하면서도 아쉬운 것으로 ‘규제 개혁’을 꼽았다. 그는 “우리나라 신산업 분야는 정부 규제가 과도하거나 정부 규정 자체가 없어서 아이디어가 있음에도 산업화가 되지 못하는 고질적인 문제점이 있다”며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신산업에 투자하고 진출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규제를 풀어줘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보다 그런 부분에서 진전이 더디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특히 정부가 기득권층과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봤다. 그는 “교육·의료·문화콘텐츠 등 국가 전체적으로 부가 창출돼 기득권의 손해를 보전하고도 남을 정도의 성장성이 보이는 분야에 대해서는 정부가 과감하게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정부가 남북 간 경제협력의 물꼬를 터주기를 바란다는 희망도 전했다. 이 원장은 “북핵 문제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외교적으로 풀어야 할 선결 과제가 많지만 경제협력은 남북 양쪽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며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등 경협에 대해서는 정치적 문제를 벗어나 전향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바람을 드러냈다. /정리=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사진=권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