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0일. 남일당 건물 망루 화재로 철거민 5명과 경찰 특공대원 1명이 숨진다. 검찰은 화염병으로 인한 화재로 결론을 내리고, 철거민 25명은 형사처벌을 받는다. 그리고 4년의 옥살이. 출소한 생존자들의 분노는 애꿎게도 서로에게 향한다. 같은 참사의 피해자, 같은 상처. 생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그들은 왜 그렇게 서로를 원망하는 걸까.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분노의 화살은 왜 서로를 겨누고 있었던 걸까.
‘공동정범’(제작 연분홍치마, 감독 김일란, 이혁상)은 지난 2009년 벌어진 용산참사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불타는 망루에서 살아 돌아왔지만 공동정범으로 기소돼 형을 살다나온 생존자 5명의 인터뷰를 통해, 용산참사의 아픔과 이를 방치한 국가 폭력의 실체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사진=연분홍치마
영화는 방점은 진실 규명이 아닌 생존자들의 심리 상태 조명에 찍힌다. 용산참사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숨 가쁘게 몰아치기보다는, 생존자들이 겪고 있는 육체적·정신적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이를 통해 당시의 참사가 여전히 그들에겐 현재진행형임을 관객이 직접 느낄 수 있게 한다. 생존자들이 인터뷰를 통해 드러내는 감정의 진폭은 용산참사의 비극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화초를 기르고 달팽이를 키우는 섬세한 성격의 김주환(서울 신계동 철거민)씨는 술을 마시고 극도로 분노하는 모습을 보인다.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이었던 이충연 씨는 가장 먼저 망루에서 뛰쳐나온 자책감과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의 슬픔을 동시에 느끼며 정신적인 괴로움을 호소한다.
또, 딸에게 아빠는 범죄자냐는 질문을 들은 김창수(성남 단대동 철거민)씨는 허탈한 웃음을 짓고, 천주석(상도4동 철거민)씨는 출소 후 여전히 ‘큰 감옥’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힘들어 한다. 지석준(순화동 철거민)씨는 참사 당시 자신의 기억이 부정확하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한다.
적막한 분위기 속에서 쉴 새 없이 주인공들의 감정을 따라가게 하는 영화는 엔딩에 이르러서야 깨달음을 안긴다. 그들이 서로를 향해 원망하고, 스스로 자책하는 것이 결국 국가 권력의 폭력에서 비롯된 것임을, 진짜 원망해야 할 대상이 바로 국가임을 말이다. 영화가 그토록 개인의 심리 상태에 주목해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이유도 여기서 드러난다. 관객은 ‘도대체 왜 저렇게 서로 원망하고 힘들어하는 가’라는 혼란스러운 관람 속에서 사유와 성찰의 기회를 제공받는다.
그래서 영화는 한편으로는 불친절하다. 전작 ‘두개의 문’의 후속작인 만큼, 영화는 용산참사 당시의 사건 진행 과정과 재판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두개의 문’을 관람하지 않은 관객에게 생존자들의 감정은 다소 낯설게 느껴지고, 진실 규명에 대한 궁금증은 속시원히 해소되지 않는다. 영화는 용산참사라는 소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떠올렸을 때 관객이 기대하는 그림이 아닐지 모른다.
영화에서 교차돼 보여지는 용산참사 현장 영상과 인터뷰 영상은 세월의 흐름을 대조적으로 드러낸다. 참사 현장의 흐릿한 영상과 고화질 인터뷰 영상. 9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영상의 차이는 생존자들의 상처와 아픔이 현재진행형임을 더욱 부각 시킨다. 그들이 회상하는 참사 당일의 이야기가 말 그대로 ‘현재진행형’으로 표현되고 그들의 트라우마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지만, 참사의 기억은 흐릿한 풋티지처럼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 담담한 시선이 지루하고, 불친절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영화의 울림은 더욱 진해진다. 영화는 관객에게 분노할 대상을 설정해주거나 무엇이 잘못 되었고 누구의 잘못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생존자들의 감정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 깨우치게 한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하게 한다. 참사의 피해자를 단순히 ‘선한 희생양’으로 그리지 않고, 갈등과 분노의 주체로 그려내며 더 절실히 참사를 느끼게 하는 영화의 접근법이 신선한 이유다.
한편, ‘공동정범’은 오는 25일 개봉한다.
/서경스타 오지영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