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정통부의 설명대로 두 기관은 수조 원에 이르는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을 집행하고 평가하는 중책을 맡고 있는 만큼 ‘감사’를 통해 ‘감시’를 받아야 한다. 감사 결과 비위나 문제가 드러나면 제재를 받거나 문제점을 개선해 국가 과학기술정책 추진에 한 치의 허점도 없도록 해야 한다. 기관장의 개인 비위가 있을 경우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지만 연구 지원·평가 과정에서 발생한 사소한 문제를 침소봉대해 조직을 흔들고 기관장 스스로 물러나도록 압박해서는 안 된다. 특히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의 옷을 강제로 벗기는 구태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이는 적폐 청산을 내세워 다시 폐단을 쌓는 일이다.
과학기술 분야는 오랜 기간에 걸친 투자가 이뤄져야 성과가 나오는 특성 때문에 해외 선진국의 경우 기관장들이 장기 재임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미국 국립과학재단은 1951년 설립 후 총 14명(직무대행 제외)의 이사장이 거쳐 갔다. 평균 임기가 4년이 넘는다. 반면 2009년 설립된 한국연구재단은 벌써 다섯 번째 이사장이 재직하고 있다. 평균 임기가 2년이 채 안 된다. 정권의 코드에 맞춘 조직 운영으로 비판을 받거나 정권이 바뀌면서 사퇴 압박을 받아 스스로 물러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쯤 되면 ‘연구재단 이사장 잔혹사’라고 할 만하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송년 기자 간담회에서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과학기술 분야 기관장의 임기가 남았는데도 강제적으로 그만두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정권의 국정철학을 같이하는지, 경영 역량을 갖췄는지 살펴보겠다”고 덧붙였다. 현 정부의 국정철학과 맞지 않으면 스스로 옷을 벗으라는 얘기다. 과학기술인이라고 왜 정치적 입장이나 야망이 없겠는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정권 코드에 입 맞추는 과학기술인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과학기술에도 정치적 코드를 맞출 것을 강요하는 정권이 아닌가.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로 창의적 연구를 활성화하는 데 정치적 이념이 끼어들 틈이 어디 있는가.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현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도 녹색성장과 창조경제가 사라진 자리에 혁신성장과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이라는 슬로건만 바꿔 단 것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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