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는 지난 2015년 국내 10대 기업 중 처음으로 이사회 내 주주권익 보호기구인 투명경영위원회를 설치했다. 투명경영위는 사외이사만으로 구성된 이사회 내 독립적인 의사결정기구로,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주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반영하는 역할을 맡았다. 투명경영위원회에 소속된 사외이사 4명 중 1명은 주주권익보호 담당이다. 주주 관점에서 의견을 적극 피력하고 이사회와 주주간 소통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같은 해 7월 현대차(005380)는 상장 이후 처음으로 중간배당을 실시했다. 현대차가 기업지배구조 설명회도 주요 투자자를 대상으로 열고 , 2016년에 배당 규모를 전년대비 33% 확대하며 주주환원 기조를 명확히 한 것도 주주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다.
현대차가 이 같은 주주권익보호 담당 사외이사의 선임 방식을 국내외 일반 주주들로부터 추천받은 후보군에서 선택하기로 한 것은 주주환원 정책과 경영 투명성을 한 단계 더 강화하겠다는 심산이다. 기존의 담당 사외이사도 주주권익을 대변했지만 결국은 사측인 이사회에서 선임한 인물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이사회가 주주보다는 경영진, 사주 일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인물을 앉히게 되면 주주 목소리를 대변하는 창구는 허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주주에게 주주권익보호 담당 사외이사 추천권을 주더라도 여전히 한계는 있다. 주주권익보호 담당 사외이사 선임 과정은 이사회의 사외이사 후보 추천 자문단이 주주 추천 후보군에서 3~5명으로 추리고 이사회 내 사외이사추천위원회가 최종 후보자를 정한다. 이후 주총에서 최종적으로 사외이사가 선임된다. 사실상 결정 권한은 여전히 이사회가 쥐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 자체를 주주가 구성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는 게 재계 중론이다. 거수기 역할을 하지 않을 만한 인물, 경영진을 제대로 견제할 만한 인물들로 후보군이 채워지면 자문단은 물론 추천위원회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주주들, 특히 다수의 소액주주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이 있으면 사외이사 추천위원회는 이를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같은 날카로운 시각으로 경영진을 감독하는 재야의 학자들이 사외이사로 선임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주주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기업 스스로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면서 “실제 경영상의 결정에도 주주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권한을 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상반기 해당 사외이사의 임기가 만료되는 현대글로비스를 시작으로 주주권익보호 담당 사외이사의 주주 추천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22일 공모 절차를 밝히고 25일부터 31일까지 우편을 통해 사외이사 추천서를 포함한 관련 서류를 받는다. 담당 사외이사의 임기는 3년이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해당 사외이사의 임기가 만료되는 2019년부터, 현대모비스는 2020년부터 제도를 도입한다. 현대제철과 현대건설 역시 투명경영위원회를 먼저 설치한 후 주주들로부터 주주권익보호 담당 사외이사를 추천받을 계획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모든 계열사들은 주주 추천 사외이사 등과 함께 경영 투명성을 강화할 방침”이라면서 “미래성장 전략을 주주들과 공유하고, 주주의 이익과 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조민규기자 cmk25@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