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전자상가 가보니] 가상화폐發 GPU 대란…"조립PC 못 팔 지경"

채굴 핵심부품 그래픽카드 품귀
AI·보안 개발자용 PC수급 난항
배그 등 고사양 게임 인기도 한몫
1년새 부품 가격은 2배로 뛰어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물건이 없어요…조립해서 팔 것도 없을 정도에요”(용산 전자상가 조립 컴퓨터 판매매장 직원)

“신입사원이 입사했는데, 그래픽카드 물량부족으로 PC가 안 와요. 컴퓨터 없는 빈자리에 며칠간 앉혀놓기도 했습니다”(중견 IT업체 직원)


18일 오후 용산 전자상가 3층에 들어서자 PC 사양이 잔뜩 적힌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일반 가정용부터 전문가·고사양 게임용 PC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중앙처리장치(CPU)·하드디스크 용량 등 사양에 따라서도 가격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래픽카드(GPU)가 고급일수록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40만원까지도 차이가 나는 게 특히 눈에 띄었다.

한 매장 직원에게 고사양 게임에 적합한 GPU를 문의하자 “고급 GPU를 게임에 쓰기엔 너무 비싸졌다”는 답이 돌아왔다. 최근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채굴 열풍이 불면서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간다는 것이다. 그는 “총판 등 여기저기 뒤져서 찾아줄 순 있지만 좀 높은 용량을 사용하려면 50만 원 이상은 쓸 생각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30만원이면 구매할 수 있었던 부품이 2배 가까이 뛰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가상화폐발(發) ‘GPU 대란’이 거세다. 가상화폐 채굴에 컴퓨터를 사용하려면 복잡한 수학 문제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성능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채굴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고성능 GPU를 여러 대 장착해 채굴기를 만들면서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버워치·배틀그라운드 등 고성능 그래픽 처리를 요구하는 게임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점도 천정부지로 치솟은 GPU 몸값에 한 몫 거들고 있다. 가격비교 사이트 에누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그래픽카드 전체 매출은 전년 같은 달 대비 약 88% 증가했다. 지난해 6월 채굴용 GPU 수요 증가로 상승했던 가격도 7월 이후 안정화됐으나 하반기부터 다시 가상화폐 가격이 급등, 그래픽카드 최저가도 12월 말부터 급격히 상승했다. 인기 제품들은 최저가격은 최근 3개월(2017년 10~12월) 새 약 27~33% 가량 인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 폭등에 이어 품귀현상이 일어나면서 일부 정보기술(IT) 업체들은 업무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인공지능(AI)·게임·보안 등 컴퓨터 내부에서 단순 연산을 짧은 시간에 반복하는 능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개발자용 PC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한 중견 IT업체의 구매담당자는 “업종 특성상 고성능 GPU를 탑재한 업무용 PC 구입이 많은 편인데, 용산 등에서도 GPU 물량 확보가 어려워졌다”며 “발주한 PC가 제때 오지 않아 신입사원이 빈자리에 앉아있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AI 관련 스타트업 관계자도 “실제로 기업납품가 기준으로 하더라도 GPU 새상품 가격이 크게 오른 것 같다”며 “이마저도 원하는 브랜드를 선택해 구매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미리 PC를 확보한 기업들도 긴장하고 있다. 한 대형 게임사 측은 “총판을 통해 미리 일정 물량을 확보해 놓았지만, 품귀현상이 장기화되면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어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GPU 대란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IT업체 한 관계자는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하거나 채굴 열풍이 끝나면 GPU 수요가 줄어들고, 중고 매물이 시장에 쏟아지고 가격이 급락할 수도 있다”며 “채굴에 사용된 그래픽 카드는 수명이 많이 소모됐기 때문에 잦은 고장 위험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권용민기자 minizz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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