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촬영 중 포즈를 취한 한상희. 10㎞ 단축마라톤과 클라이밍을 즐기는 한상희는 “다른 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희열을 올해는 골프장에서도 느끼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에이파트너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선수 한상희(28·볼빅)의 별명은 ‘서바이벌 퀸’이다. 상금랭킹 60위에 들지 못해 거의 매번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지는 시드전으로 밀리지만 그때마다 잘도 살아남는다. 몰라보게 뛰어난 샷감을 자랑하며 귀신같이 2부 투어 강등을 면한다.
한상희는 올 시즌도 정규투어를 뛴다. 지난해 말 ‘지옥의 레이스’로 불리는 시드전을 당당히 4위로 통과했다. 시즌 준비에 한창인 한상희는 서울경제신문을 만나 “스무 살부터 매년 시드전을 봐왔다. 대회장이 전남 무안이라 동료들은 저를 ‘무안의 여왕’이라고 부른다”며 웃었다. “‘어차피 시드전 가도 다시 올라올 거잖아’라고 얘기해주는 동료들도 있는데 사실 저도 부담되는 건 마찬가지예요. 막상 필드에 나가면 이상하게 과감해지는 게 있긴 한데 이제 시드전 가는 건 그만해야죠.”
키 174㎝의 늘씬한 체구를 자랑하는 한상희는 지난해 한 대회에서 우승 경쟁을 벌이면서 팬도 제법 생겼다. 7월 카이도 여자오픈이었다. 66-68타로 최종 라운드를 앞두고 단독 선두. 그러나 마지막 날 78타로 무너졌고 순위는 22위까지 곤두박질쳤다. 당시 TV 중계화면에 자주 잡히면서 ‘필드의 모델’이라는 새 별명도 얻었지만 생애 첫 우승을 놓친 안타까움이 더 컸다. 한상희는 “머리로는 편하게 하자고 생각했는데 몸은 그렇게 되지 않더라. 사실 최종 라운드 전날 잠도 잘 못 잤다”고 돌아봤다. 왼쪽으로 심하게 당겨지는 훅 샷이 계속 나면서 아웃오브바운스(OB)와 해저드 구역을 전전했다.
어린 시절 용인시 대회 2위에 오를 정도로 육상에 소질이 있던 한상희는 중학교 3학년 때 주변의 권유로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이후 정규투어에 진출하기도 전에 대기업의 후원을 받아 업계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허윤경·안신애 등이 프로 동기생. 그들만큼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한상희는 “서른 넘어서도 전성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비시즌 중 10㎞ 단축마라톤과 실내 암벽등반, 수영, 스쿼시 등을 게을리하지 않는 이유다. 10㎞를 50분대에 달리는 그는 기록을 줄여나가는 데서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올해는 필드 밖에서 느끼는 희열을 골프장 안으로 가져오는 게 목표다. 드라이버 샷은 자신 있다. 미국에서 뛰는 장타자 김세영과 과거 장타 타이틀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기도 했다. 지금도 260~270야드를 꽤 정확하게 보낸다. 100m 안쪽 어프로치 샷과 퍼트가 관건인데 한때 발목을 잡았던 퍼트 입스(불안증세)는 거의 떨쳐냈다. 제주에서 맹훈련 중인 한상희는 다음달 베트남으로 이동해 막바지 담금질에 들어간다. 오는 3월9일 베트남에서 열릴 한국투자증권 챔피언십으로 대장정의 문을 연다. 그는 “스윙과 심리적인 부분에서 무엇이 부족한지 확실하게 깨달은 만큼 올 시즌은 달라진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늦게 시작한 만큼 조급해하지 않겠다. 저의 골프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