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세 차례의 만남 끝에 굵직한 결과물들을 만들어냈지만 북한이 ‘평창 청구서’를 내밀 것이라는 우려가 어느 정도 현실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마식령 스키장 공동훈련과 금강산 합동행사 등으로 북한이 제재 약화를 꾀할 수 있어 국제사회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반도기를 앞세운 공동입장과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으로 여론이 악화하면서 남남갈등 또한 격화되고 있다.
남북이 지난 17일 공동훈련을 진행하기로 합의한 북한 마식령 스키장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대표적인 치적물이다. 우리 정부가 여기에 스키장 이용료를 낼 경우 벌크캐시 이전을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위반할 소지가 있다.
마식령 스키장 공동훈련은 평창올림픽과의 연관성이 크지 않아 명분에 대한 의구심도 남는다. 평창 실무회담 우리 측 수석대표였던 천해성 통일부 차관은 회담을 마친 뒤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들이 이 공동훈련에 참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올림픽과 관련이 없는 행사를 추진했다는 지적에 통일부 당국자는 “올림픽이 임박한 시점에서 평화올림픽 구상을 위해 남북이 합의할 수 있는 합리적인 안이었다”고 해명했다.
북한 예술단을 제외한 방문단의 경의선 육로 이동안과 금강산 합동행사가 각각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일단 천 차관은 “남북 경제협력 추진과는 관련이 없고 5·24조치의 틀 내에서 추진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향후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상황이 바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경제신문 펠로(자문단)인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북한이 올림픽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져서 평창올림픽인지 ‘평양올림픽’인지 모를 지경”이라며 “정부가 ‘포스트 평창’을 생각해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건드렸지만 국제 제재와 충돌할 가능성이 커 너무 많이 나간 것이 아닌가 싶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평창동계올림픽’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은 채 금강산 합동행사와 마식령 스키장 공동훈련을 선전하는 모양새다.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에는 한반도기와 인공기만 등장할 뿐 태극기는 보이지 않아 북한이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으로 선전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백악관은 일단 남북 공동입장에 대해 “북한과 북한의 선수들에게 자유의 맛을 보여주기를 바란다”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남북한이 손을 잡고 있다고 해서 위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며 “김정은의 의도는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것”이라고 경계했다. 미국 CNN방송도 “양국의 군사적 긴장감을 낮췄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받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북한이 이번 협상을 무기 프로그램 완성을 위한 시간 벌기에 사용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