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인의 예(藝)-<46>서세옥 '춤추는 사람들']화폭 가득 '무리의 울림'...붓 지난 자리는 그대로 춤사위

슥슥 그은 선, 툭툭 찍은 점만으로
뒤엉킨 군상 속 생명의 파동 담아내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수묵화 불구
마티스의 색감 무색하게하는 필력
일제강점기 외색풍 채색화에 반발
담채에 의한 담백한 공간처리 중시
화가 이자 漢詩에 일가 이룬 시인
기교 초탈한 조선 문인의 정신세계
지필묵 사용해 추상화풍으로 구현

서세옥 ‘춤추는 사람들’ 1990년대, 닥지에 수묵, 164x126cm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손에 손잡고 어우러져 춤춘다. 한 사람의 오른손은 옆 사람의 왼손을 붙들고, 또 그 손은 위쪽 사람의 발과 연결되고, 아래에 있는 사람의 손으로 또 이어진다. 화면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한 덩어리를 이룬다. 하나라고 외치며 치솟는 우리네, 한민족을 보는 듯하다. 농묵의 짙은 흔적에서 인간의 강렬한 힘이 느껴지고 먹의 번짐에서는 생명력의 파동이 전해진다. 물기 머금은 촉촉한 선에서 시작해 아스라한 갈필을 넘나들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그은 선은 자유자재로 뒤엉켜 사람들 간의 조화를 탄생시켰다. 붓이 지난 자리는 그대로 춤사위가 됐다. 그저 슥슥 그은 선과 툭툭 찍은 점만으로 수십 명 군상의 열정을 만들어내니 재주와 기교를 초탈했다. 지필묵(紙筆墨)의 전통 한국화 재료를 사용해 조선 문인화가의 정신성을 현대적 추상화풍으로 구현한 화단의 거목 산정(山丁) 서세옥(89)의 대표작 ’춤추는 사람들’이다. 그림에서는 ‘세한도’의 추사 김정희나 소나무를 즐겨 그린 능호관 이인상 같은 선비화가가 내뿜던 문기(文氣)가 감지된다. 조선에서는 지식인의 전유물이던 문인화가 현대의 서세옥에 이르러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각적인 그림인 동시에 보편성을 가지게 됐다는 점이 의미있는 차이점이다.

오직 먹 묻은 붓 하나로, 오로지 선과 점만으로 그려낸 사람의 형상이다. 작가는 일찍이 1970년대 후반부터 이렇게 간략한 선으로 사람들을 그리기 시작했고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서는 ‘손에 손잡고’ 하나 된 사람들의 화합과 희열의 몸짓을 보여주는 이 같은 군상을 다수 남겼다. ‘손에 손잡고’는 1988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이탈리아의 조르조 모로더에게 작곡을 의뢰해 보컬그룹 코리아나가 노래한 올림픽 공식 주제가의 제목이기도 하다. 올림픽 기간 중 유럽과 미국의 음악차트 1위에 오르며 세계를 하나 되게 만든 바로 그 곡이다.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백남준(1932~2006)이 위성을 통해 전세계를 연결하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바이 바이 키플링’ 등의 작업을 선보인 후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맞춰 공개한 새 위성 프로젝트의 이름도 ‘손에 손잡고’였다. 다양한 국가의 여러 방송국이 합심해 프로그램을 송출한 이 작품에는 중국과 러시아도 참여하면서 올림픽과 예술을 통한 냉전시대의 종말 선언도 담겨 있었다.

서세옥 ‘사람들’ 1980년대, 닥지에 수묵, 164.5x133cm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산정의 1977년작 ‘춤추는 사람들’은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1869~1954)의 ‘춤(Dance)’을 떠올리게 한다. 담박한 수묵화임에도 야수파를 대표하는 마티스의 강렬한 색감을 무색하게 하는 필력이라 칭송할 만하다. 단순하니 쉽다 싶은가. 작정하고 흉내 내본들 계산해서 따라 그려본들 그 발치도 따라갈 수 없는 것이 바로 붓끝에 어린 기운이다. 화가인 동시에 서예가이며 한시(漢詩)에 일가를 이룬 시인, 글씨를 파는 전각자로 다재다능한 서세옥은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券氣)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강강술래를 하는 사람들인 양 어울렁더울렁 손 맞잡은 사람들에게서 생생한 흥겨움이 꿈틀댄다. 엄마 손을 붙들고 나온 듯한 키 작은 아이도 그림 중간에 끼어있고, 신명에 겨운 나머지 몸을 띄워 거꾸로 선 사람들도 눈에 띈다. 먹선 하나로 이토록 다양한 인물상을 격정적으로 표현하다니 보고 또 봐도 감탄이 터진다.

서세옥 ‘춤추는 사람들’ 1990년대, 닥지에 수묵, 240.5x172cm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손 맞잡은 서세옥의 군상은 ‘사람들’이라는 제목 아래 다양한 변주를 보여준다. 나선형 유전자처럼 꼬이고 연결된 인물상은 유려하고 부드러워 절로 어깨춤이 난다. 날개 펼친 박쥐처럼 높이 쳐든 팔 아래로 늘어진 옷자락이 역삼각형을 이루는 모습은 경쾌하고 역동적이다. 서예 글씨를 쓰듯 획의 삐침 같은 붓질로 달리는 사람의 동세를 만들기도 했다. 어깨동무를 하고 나란히 붙어 앉은 듯, 각진 어깨를 맞댄 견고한 느낌의 사람들에서는 듬직함과 안정감이 느껴진다. 둥그스름한 몸통 위로 동글동글한 머리를 그려넣어 무수한 젖무덤인 성 싶은 작품은 출근길 지하철역에 쏟아져 나온 도시 서민들의 처진 어깨가 생각난다. 때로 사람들은 무대인사처럼 손을 맞잡고 고개 숙인 모습으로도 나타나고 극도의 기하학적 추상으로 발전해 사각형과 작은 점으로 구현되기도 한다.


서세옥 ‘사람들’ 2004년, 닥지에 수묵, 173.8x138.5cm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이례적으로 특정한 인물 관계가 드러나는 작품이 바로 ‘어머니와 아들’이다. 두 채의 집이 포개진 형상이다. 아들에게 어머니는 한결같이 비바람 막아주는 집 같은 존재다. 어머니에게 아들 역시 자신의 품 전체를 오롯이 채우는 그런 존재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못지않은 모자의 애틋함이 격정적이지 않은 담담한 표현으로, 꾸밈없는 보편적 언어로 웅숭깊은 감동을 전한다. 파도가 찰싹이는 백사장에, 혹은 물기 젖은 학교 운동장 흙 위에, 무엇을 채워야 할지 막막한 빈 종이 위에 손으로 그려보고 싶은 그런 어머니와 아들이다.

서세옥 ‘어머니와 아들’ 2000년대, 닥지에 수묵, 45x43cm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1929년 대구에서 태어난 서세옥은 한학자이자 항일지사 집안에서 자라 자연스럽게 민족의식이 몸에 배었다. 1946년 설립된 서울대 미술학부 제1회생으로 입학한 그는 당시 동양화과 교수를 지낸 근원 김용준(1904~1967)의 전통 미술 교육과 묵법 화풍의 영향을 받았다. 먹으로 그리되 과거 문인화의 답습은 아니었다. 간결한 선묘, 담채에 의한 담백한 공간처리를 중시했다. 일제 강점기 동양화단이 왜색풍 채색화에 물든 것에 반발한 것으로도 볼 만했다. 대학 4학년 때 해방 후 첫 국가 공모전으로 신설된 제1회 국전(國展)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으며 이름을 떨쳤다. 1950년대 후반 한국 전쟁의 상흔이 아물 무렵 그는 파격적인 수묵 추상 작품으로 미술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1960년에 묵림회를 조직해 ‘전위적인 청년작가’로 활동했다. 같은 시기 서양화단은 앵포르멜(예술가의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한 전후 유럽의 추상미술 경향)의 자극을 받아 아방가르드 운동이 조짐을 보일 때였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젊은 서세옥은 헝겊에 솜방망이로 먹을 두들기거나 나무판에 석고를 발라 칼로 긁는 그림 등 ‘그리는 행위’에 대한 근원적 문제 제기를 했다. 혁명에 가까운 격변기를 거친 그는 풍랑을 이겨낸 배처럼 수묵추상의 정체성을 자신의 길로 찾아낸다. 자호 ‘산정’은 산지기라는 뜻이다.

“화가도 인간이다. 인간에 흥미를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인간 형상을 다각적으로 표현한다. 외톨박이가 있고, 함께 울고 웃는 사람도 있다. 어머니가 아이를 품고 있는 모자상도 있다. 어머니의 탯줄을 자르고 나서는 혼자 돌아다니며 뿌리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어머니는 우리 정신의 ‘집’이다.…때로는 몸통은 사라지고 인간이라는 껍데기만 남긴 작품도 있다. 수많은 인류의 희로애락을 표현한 것이다.”

서세옥 ‘점의 변주’ 1959년, 닥지에 수묵, 95x73.5cm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한국미술의 국제화 흐름에 앞장서 상파울루비엔날레, 카뉴국제회화제 등에서 활약한 그는 서울대 교수로 후학을 양성한 후 현재는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장남 서도호는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모색해 천과 실로 만든 ‘집’ 설치작품이나 다양한 재료로 표현한 군상 등으로 유명한 국가대표급 현대미술가이다. 배우 최무룡이 ‘최민수의 아버지’로 불리듯 우스개처럼 서세옥을 ‘서도호 작가의 부친’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이가 있을 정도다. 서도호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막작으로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이라는 설치작품을 선보였고, 그의 동생이자 서세옥의 차남인 서을호는 ‘현대 모터스튜디오’ 등 진짜 집을 만드는 건축가로 활약 중이다. 두 아들이 모두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광주비엔날레 공동프로젝트로 참가하며 가문을 빛냈다.

성북구립미술관 명예관장으로 지금도 붓과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서세옥은 자신의 예술관을 이 같은 말로 표현했다.

“실상(實相)과 허상(虛相)이 조화를 이루면 모두가 정토가 아니던가. 여기에 나의 붓끝이 닿으면 춤과 노래가 흥겹게 어우러질 것이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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