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라하는 뮤지컬 배우들을 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연기, 노래, 춤,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탄탄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른바 ‘종합예술’이라 불리는 뮤지컬계에서 스타 배우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탄탄한 실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 이 실력이 완성되는 데에는 배우의 타고난 재능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예그린라운지에서 만난 강홍석은 ‘그는 타고난 게 많을 거야’라는 시선을 단숨에 불식시키는 ‘노력파’ 배우였다. 타고난 재능에 부단히도 공부하고 배우는 그의 노력이 더해져 지금의 폭발력있는 배우 강홍석을 만들고 있었다.
배우 강홍석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서경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사진=조은정기자
강홍석은 2014년 ‘킹키부츠’의 ‘롤라’ 역으로 데뷔 4년만에 대극장 주연을 꿰차더니, 급기야는 제9회 더뮤지컬어워즈 남우주연상을 수상, ‘첫 주연 첫 남우주연상’이라는 영광을 거머쥐으며 단숨에 실력파 라이징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그래서 그가 노력파라는 ‘반전(?)’은 충분히 임팩트 있었다.데뷔작 ‘스트릿라이프’(2011)에서 힙합 춤을 따라가기 위해 4개월간 댄스학원에서 살았다는 강홍석. 현재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 ‘모래시계’에서도 그의 노력파 면모는 작품의 준비과정에서부터 고스란히 드러났다.
강홍석은 “모래시계를 대사만 알지 (내용은) 잘 몰랐어요. 제가 외모에 비해 나이가 많지는 않아서”라고 해맑게 웃으며, 작품의 준비과정을 들려줬다. 그는 격동의 현대사를 다루고 있는 모래시계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었고, 사람들을 만났다.
“배우는 시대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선배님들이 말씀하셨어요. 이 시대에 필요한 캐릭터가 뭔지 항상 고민해야 한다고. (예전엔) 잘 못 느꼈는데 (공연을 하다 보니) 무대에 서는 사람이 가장 솔직하고 많이 알아야 되더라고요. 제가 잘 알아야 관객이 느끼고, 또 대사 하나를 쳐도 자심감이 붙어요. 그래서 (이번에) 민주화운동 관련 다큐멘터리를 다 찾아봤어요. 삼청교육대도 찾아보고, 선배님들께 이야기도 많이 들으면서 찾을 수 있는 건 다 찾은 것 같아요. 피부로라도 간접적으로 느끼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편이에요.”
시대를 읽고 이를 캐릭터에 녹여내고자 하는 노력 덕분일까. 강홍석은 모래시계에서 악역 ‘종도’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이며 많은 관객의 호평을 받고 있다. ‘종도’는 남다른 야망과 처세술로 배신을 일삼으며 주인공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인물. 강홍석은 그 시대의 완벽한 ‘종도’를 표현해내기 위해 ‘바지핏’이라는 세세한 설정까지 고민하며 연구했다.
“종도는 악(惡)으로 가는 직접적인 계기나 설정이 없어요. 상상 속으로 만들어야 해서 어려웠어요. 성환이형(더블캐스팅 박성환 배우)과도 얘기를 많이 했어요. ‘얘는 왜 이렇게 살았을까. 종도는 왜 이럴까.’ 고민 끝에 입체감있는 악역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처음부터 나쁜 놈으로 보이기보다는, 점점 나쁜 놈으로 성장하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또 2인자이지만 근처에 있으면 뼈도 못 추릴 힘있는 사람이면 했어요. 그래서 바지도 줄였어요. 타이트 하고 빡세게 보이려고.(웃음)”
배우 강홍석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사진=조은정기자
캐릭더 설정 뿐 아니라 장면과 대사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참고할만한 무대 위 모델이 없는 창작 초연인 만큼, 그는 연출, 스태프, 배우들과 함께 고민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감옥에 있는 태수를 찾아가 협박하는 씬에서 무수히 많은 설정을 고민해봤다는 그는 이 고민의 과정이 “창작의 맛”이라고 표현했다. “태수를 찾아가는 씬은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대사도 정말 많이 바꾸고 음악을 넣어보기도 하고요. (창작이기 때문에) 첫공 전까지 많이 불안했어요. ‘우리 이야기가 괜찮을까?’ 엔딩을 몇 번을 바꾸고 대사와 안무를 수없이 바꿔가면서 관객들이 편안하게 보게 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근데 이게 또 창작의 맛인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이번 작품은 정말 잘 나왔다고 생각해요.”
검증된 라이선스 작품을 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수월할 법도 한데, ‘노력하는 배우’ 강홍석은 오히려 ‘창작’과 ‘초연’ 공연을 감사하게 느끼고, 오히려 욕심이 난다고 했다.
실제 강홍석은 그를 스타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 ‘킹키부츠’(2014)뿐 아니라, ‘데스노트’(2015), ‘나폴레옹’(2017) 등의 국내 초연에 출연했다. 그는 오는 31일 개막을 앞두고 있는 ‘킹키부츠’(2018)의 연출 제리 미첼 감독이 한국에 들어와 극장까지 와서 인사해주고 간 일화도 전하며, 초연 캐스팅에 대한 감사함과 배우로서의 욕심을 밝혔다.
그는 “‘드라큘라’ 빼고는 다 초연이었는데, 초연할 수 있는 건 되게 고마운 일이에요”라며 “초연을 안 놓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창작과 초연을 잘해야 좋은 배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초연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배우 강홍석이 18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서경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사진=조은정기자
무대에서는 강렬한 인상의 실력파 배우, 삶의 이야기에선 노력파임이 느껴지는 배우 강홍석. 그렇다면 그는 관객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을까. “저는 관객분들이 어떻게든 기억만 해주시면 된다고 봐요. 그것만으로 감사해요. 튀는 캐릭터가 계속 들어오는 건 생긴 것도, 목소리도 특이해서 그런 것 같은데, 똑같은 연기를 하더라도 관객분들이 재밌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캐릭터가) 개인적으로 욕심은 나죠. 근데 그건 송강호, 최민식 선배님들처럼 대가가 됐을 때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전 아직 에베레스트처럼 갈 길이 멀어요(웃음)”
인터뷰 내내 겸손한 모습으로 ‘아직 갈 길이 멀다’를 강조하는 그는 앞으로 방송과 영화를 통해서도 자신을 더 알리는 일에 적극 나설 생각이다. 많은 대중들이 자신을 더 알게 돼 공연장을 찾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
“예능이요? 뭐든지 불러만 주시면 합니다.(웃음) 아직은 대중분들이 제가 누군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일단 알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극장에 오시는 데까지의 과정이 수월하실 것 같아서요. 감사하게도 회사에서 오디션도 알아봐 주고 서포트도 해주면서 여러 길을 제시해주고 있고, 다양한 쪽으로 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해요.”
부단한 노력으로 만들어낸 무대로 강렬한 인상을 주고, 다양한 활동으로 많은 관객들이 다시 그 무대를 찾아와주길 꿈꾸는 배우 강홍석. 관객들이 배우 강홍석이 나오는 작품을 보겠다며 그의 이름을 검색창에 쳐보는 일이 머지않아 보인다.
한편,‘모래시계’는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내달 11일까지 공연되며, 2월 23일 광주를 시작으로 지방 공연을 올릴 예정이다.
/서경스타 오지영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