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Market] 한파, 기후변화 그리고 기초과학

국종성 포스텍 환경공학부 교수
기후정보 경제적 가치 커지는데
APEC기후센터 예산삭감 우려 유감
장기적 관점서 기초연구 지원을

지구촌 곳곳이 강추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지난주 강원도 일부 지역에는 온도가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지는 등 올겨울 가장 강력한 한파가 찾아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황은 북미 지역에 찾아온 극강 한파에 비하면 포근한 봄바람 정도다. 북미 지역에서는 최근 들어 영하 50도에 가까운 한파가 발생해 나이아가라 폭포가 꽁꽁 어는 등 최악의 추위와 폭설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 ‘투모로우’의 비현실적 상황이 현실로 찾아온 느낌이다. 이러한 강추위는 올해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가 만들어내는 온난화의 역설이다.

기후학자들은 이러한 강추위의 원인을 북극 온난화로부터 찾고 있다. 북극이 따뜻해지면 제트기류가 약화돼 북극의 찬 공기가 중위도 지역으로 내려오기 쉬워진다. 특히 올해 전 지구적인 한파가 극성을 부리게 된 것은 여기에 더해 열대 태평양에서 해수면 온도가 낮아지는 라니냐 현상이 발생하면서 중위도 추위를 더욱 가중시키는 역할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구온난화와 한파의 관계는 필자가 학생이던 15년 전만 해도 전혀 다르게 알려져 있었다. 수업에서는 지구온난화에 의한 온도 상승이 여름보다는 겨울철에 두드러진다고 배웠고 실제로 그 당시의 겨울은 과거에 비해 매우 따뜻했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어떠한 기후학자도 현재와 같은 반전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얄팍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지구의 평균 온도가 거의 매해 최고 기록을 갱신하는 동안 지구 각지에서는 한파·열파·가뭄·홍수 등 이상기후 현상이 보고되고 있다. 올해 북반구가 강추위에 시달리는 동안 호주에서는 50도가 넘는 폭염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지구온난화의 특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상기후 현상의 증가는 기후 정보가 갖는 사회적·경제적 가치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며칠 후를 예측하는 날씨 예보가 우리 생활에 필수적인 것처럼 몇 달 후를 예측하는 기후 예측은 매 계절 에너지의 수급 대책이나 냉난방기의 생산량 예측 등 여러 산업 분야에 주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아직 우리나라는 기후 정보 활용에 소극적이지만 미국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에서는 기후 정보 관련 선물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등 산업 전반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기후 예측 분야에서 국제사회를 선도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지고 있다. 일례로 국제 협약을 통해 10여년 전 부산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기후센터가 설립됐다. APEC 기후센터에서는 기후 선진국들의 예측 정보를 수집하고 재생산해 우리나라 기상청에 종합적인 기후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APEC 기후센터의 예산이 여러 정치적인 이유로 매년 삭감될 것을 염려하고 있다는 최근의 소식은 매우 유감스럽게 들린다. APEC 기후센터에서 생산하고 있는 세계적 수준의 기후 예측 정보는 앞으로 그 경제적인 활용 가치가 점점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국가 연구예산 배분 정책은 당장 눈에 보이는 경제 성과를 우선시해 미래적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정책 평가자의 눈높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초과학이 두터운 연구 풍토는 국가 과학기술 정책이 단기적인 수확을 재촉하거나 정쟁에 휘둘리는 정책 결정 구조에서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 장기적인 국가 정책의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결정 과정에서는 최소한 외부적인 평가를 객관화하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게 된 배경 맥락을 이해하고 현재 및 미래적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전문 연구자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 평가자들이 나무 한 그루에 달린 열매만을 바라보지 않기를 바란다. 기초과학 기술을 다지는 길은 과실수 한 그루가 아니라 숲을 키우는 인내심과 철학이 요구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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