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논단]개헌 때 담아야 할 과학기술 조항

김명자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전 환경부 장관
과학기술=경제발전 도구 아냐
국가경쟁력·삶의 질 향상 초점
기술 혁신의 방향성 제시해야

김명자 전 환경부장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지난해 말 ‘10대 과학기술 뉴스’를 발표했다. 31명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240건의 후보 풀에서 30개 후보를 선정하고 소셜네트워크(SNS)로 설문조사를 거친 뒤 과학기술 이슈 부문에서 4개, 연구성과 부문에서 6개의 뉴스를 선정했다. 닷새 동안 e메일과 모바일로 참여한 6,400명 가운데 과학기술인은 3,940명, 일반인은 2,460명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과학기술계와 일반인이 12개의 후보 가운데 뽑아낸 상위 4개의 이슈 뉴스가 똑같았다.

최종 선정된 이슈 뉴스 4개는 △신고리원전 건설 재개 공론화 △가상화폐·블록체인과 사회적 파장 △케미포비아 현상과 대책 △포항 규모 5.4 지진 발생이었다. 연구성과 6개 뉴스는 △유전자가위 기술로 심장병 원인 돌연변이 제거 △1,000시간 수명의 태양전지 개발 △혈액검사로 알츠하이머병 예측 △바이오 신약 기술 수출 △무인 자동 미니 트램 개발 △전기를 발생시키는 나노 실 개발이었다.


블록체인 기술의 사례에서 보듯 최근의 과학기술 혁신이 유발하는 사회적 충격은 제도적·법적 대응을 난감하게 만들고 있다. 진흥과 규제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고 윤리적 측면까지 개입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정부는 재난에 민관 협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국무총리 주재로 ‘국민안전안심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한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과학기술계와 함께 ‘국민생활과학자문단’을 출범시켜 식품, 질병, 자연재해, 화학물질, 환경, 교통·건설, 사이버 등 7대 분야에서 초기 대응과 사전 예방을 강화하고 있다. 과학기술 전문성으로 각종 리스크에 대한 국민 불안을 선제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과학기술의 주요 책무로 부상한 세상이다. 굳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논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과학기술 기반 사회에 살고 있다.

지난해 개헌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10월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는 헌법의 과학기술 관련 조항에 대한 인식조사를 했다. 그 결과 2,280명의 응답자 중 73%가 헌법 제127조 제1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전문에 이어 10개의 장, 130개의 조항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헌법에는 제9장 ‘경제(119조~127조)’ 조문에 과학기술 관련 내용이 들어 있다.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해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해야 한다’가 그것이다. 과학기술과 국민경제 발전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지만 마치 과학기술이 경제 발전의 도구적 수단인 듯이 기술돼 있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이 항목 외에 과학기술은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22조 2항에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에 들어 있을 뿐이다.

법률과 제도는 미래 비전을 다루지는 않는다. 기술 혁신이 몰고 오는 충격이 사회적 현상으로 불거져 나오면 그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21세기 개헌에서는 국가경쟁력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의 기본인 과학기술 개념을 반영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는가. 과총은 과학기술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헌 논의를 종합해 합리적인 수준의 헌법 개정 방향과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예를 들면 헌법 전문에 나온 정치·경제·사회·문화에 덧붙여 과학기술을 추가하고 총강의 제9조 1항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에 이어 2항을 신설해 ‘국가는 미래사회에 대비하고 산업·경제의 발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과학기술 진보에 노력해야 한다’를 추가하면 어떨까. 그리고 제22조 3항에 ‘모든 국민은 과학기술 성과의 이익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를 넣고 앞에서 지적된 제127조 1항을 삭제하는 대신 ‘국가는 경제·사회·과학기술 발전의 기반이 되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한다’고 수정하면 어떨까.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시대, 유구한 전통을 전승하되 미래 비전도 담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개헌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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