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의 시기를 보내다 우연한 기회에 한국과 인연을 맺어 2007년 귀화했다. 탕나였던 이름도 바꿨다. 이듬해 각종 대회를 석권하고 국가대표에 선발돼 베이징올림픽에서 감격의 동메달을 따낸 것. 당 선수가 활동하던 즈음 귀화 국가대표는 배구의 후인정 선수 등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귀화선수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달갑지 않은데다 ‘단일 민족’이라는 인식도 작용했지 싶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1980년대부터 귀화선수를 잘 활용했다. 1989년 1호 귀화 축구선수 라모스 루이를 시작으로 브라질 출신을 대거 발탁했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 맞춰 취약 종목인 농구 등에서 전력 보강차 귀화선수를 물색하고 있는 모양이다. 귀화선수라면 중동의 부국 카타르를 빼놓을 수 없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유치를 계기로 하마드 알타니 당시 국왕이 앞장서 귀화선수를 적극 유치했다.
고연봉에다 고급 아파트로 유혹하니 실력 있는 외국 선수들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지사. 2016년 리우올림픽 핸드볼 대표팀 16명 중 15명이 귀화선수였을 정도다. 2022년 월드컵 개최지로 막강한 전략을 짠다니 얼마나 많은 나라 출신이 모인 다국적 축구팀이 될지 궁금하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우리 국가대표팀에서도 귀화선수를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최근 엔트리 25명을 확정했는데 7명이 귀화선수라고 한다. 바이애슬론과 루지 등에도 순수 외국인 출신이 포진해 있다. 캐나다·미국·러시아·독일 등 국적도 다양하다. 올림픽선수단 130여명의 10%를 넘는다니 적지 않은 숫자다. 파란 눈의 태극전사들이 어떤 활약을 펼칠지 기대된다. /임석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