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 극렬 주주인 ‘셀빠’들은 주주총회 등 주주권 행사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9월29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셀트리온의 코스피 이전 상장이 결정되자 주주들이 환호하고 있다./송도=권욱기자
서울 여의도 증권회사에서 근무하는 제약·바이오 전문 애널리스트 A씨는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받을 법한 ‘문자 폭탄’으로 곤욕을 치렀다. 셀트리온(068270)에 부정적인 리포트를 발표하자마자 셀트리온 주주들이 단체로 악성 문자를 보낸 것이다. 입에 담지 못할 욕설도 다수 포함됐다. A씨는 “기업 리포트로 투자자들의 항의를 받기는 하지만 인신공격까지 받아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셀트리온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답하기를 꺼리기도 한다. 기사에 부정적인 내용이 담기면 ‘반(反)셀트리온 세력’으로 몰려 문자 폭탄은 물론 인터넷 공간에서의 악성 댓글로 업무가 마비되기도 한다. 정치판에 ‘문빠(문재인빠)’가 있다면 증권가에는 ‘셀빠(셀트리온빠)’가 있다. 주가를 올려야 한다는 공통의 목표 아래 모인 동여의도 셀빠들은 서여의도 정치권 문빠들을 뛰어넘는 수준의 단합력과 행동력을 보인다. 오는 2월 초로 예정된 셀트리온의 유가증권시장 이전 상장은 셀빠들의 집단행동 결과로 평가된다. 지난해 9월29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셀트리온 이전 상장 관련 주주총회 때 무려 1만3,324명(소유 주식 수 6,272만5,702주)의 주주들이 모였고 안건은 98%의 찬성률로 통과됐다. 셀빠들은 사비까지 털어가며 소액주주들에게 임시주총 소집 동의서와 이전 상장 찬성 위임장을 받기도 했디.
셀트리온에 단타투자가 많다고 하지만 셀빠들의 충성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코스피 이전 상장을 이뤄냈다고 자평하는 셀빠들은 셀트리온의 임상시험에도 참여한다. 셀트리온은 현재 인플루엔자바이러스 감염 치료제인 ‘CT-P27’의 효능 증명을 위한 급성 인플루엔자 A형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는데 관련 질환을 앓고 있는 주주들이 병원을 찾는 대신 임상시험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한 셀트리온 소액주주는 “독감에 걸려 몸이 많이 아팠지만 약을 먹으면 임상시험 대상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아픈 것을 참고 시험에 참여하고 왔다”며 관련 질환을 앓고 있는 다른 주주들에게도 임상시험 참여를 독려했다. 셀빠들은 관련 게시물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 나르며 임상시험 대상자 모집에 회사 대신 열을 올리고 있다. 참여가 늘어 임상시험이 성공적으로 빨리 끝나면 주가가 오르기 때문에 대리 홍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셀빠들의 맹목적인 지지는 셀트리온 주가 버블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이오 업종의 특성상 전문가가 아니면 관련 내용을 쉽게 알지 못함에도 열성적인 셀트리온 주주들은 주위의 다른 이들을 끌어들여 ‘묻지 마 투자’를 확대시킨다. 제동을 걸어야 하는 애널리스트들은 문자 폭탄 같은 일부 셀빠들의 공격에 부정적인 리포트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진 탓이다. 셀빠들의 비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외국계 증권사가 셀트리온에 부정적인 리포트를 내고 주가가 급락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만 노무라증권이 ‘비중 축소’ 의견을 제시한 데 이어 19일 도이치증권이 ‘매도’ 의견을 내면서 셀트리온은 19일 주가가 9.87% 급락했다.
셀빠들의 셀트리온 주가 폭등에 대한 믿음은 점점 커지지만 시장 전문가들의 전망은 다소 부정적이다. 실명 공개를 꺼린 한 애널리스트는 “노무라증권 자료를 보면 셀트리온은 내년 이익 전망치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이 64배로 심각하게 고평가된 상태”라며 “버블이 언제 터질지만 남아 있다는 극단적인 경고를 하는 전문가들도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거래소 측이 유가증권시장 이전 상장 승인을 다음달 8일에 결정할 경우 코스피 200 지수 편입이 6월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아 셀트리온은 지수 추종 자금 없이 코스피 시장에 데뷔하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