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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급자용 스키슬로프 중턱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린다. 한눈에 봐도 초보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빠른 속도로 직활강하고 있다. 주변의 스키어와 스노보더들은 황급히 피하기에 여념이 없다. 슬로프를 질주하던 여성은 결국 앞서 가던 한 스키어를 들이박고서야 멈춰 섰다. 자신의 실력에 맞지 않는 코스에서 욕심을 부렸다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만 것이다.
지난 14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찾은 강원도의 한 스키장. 성수기인데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둔 주말 스키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즐거운 풍경에 취한 것도 잠시. 곳곳에서 위험천만한 일들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위들이 속속 목격됐다.
다른 사람과 충돌했을 때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는 기본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날 초급자 코스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오던 홍민서(7)양은 뒤에서 직활강하며 내려오던 한 중년 남성과 부딪혀 넘어졌다. 스키 폴대가 10m 넘게 날아갈 정도로 강한 충돌이었지만 중년 남성은 “괜찮니”라는 말 한마디만 건네고 이내 사라졌다. 크게 부딪혀 중상을 입는 환자도 발생했다. 직장인 김정운(43)씨는 뒤에서 직활강으로 내려오던 한 초보 스키어와 부딪쳐 갈비뼈에 금이 가 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김씨는 “보드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실력은 괜찮은 편이지만 방향전환조차 못하는 초보가 뒤에서 들이닥치면 피할 길이 없다”고 성토했다. 슬로프 한복판을 차지한 채 연신 사진을 찍는 행위도 자주 보였다. 한 단체 이용객들은 스키장 정상의 슬로프 시작점부터 주르륵 늘어선 채 한동안 ‘셀카’를 찍어 많은 스키어들이 급하게 멈춘 후 한참을 돌아 내려가야 했다. 스노보드를 썰매처럼 타고 내려가는 사람도 보였다. 보드는 실수로 떠내려가기라도 하면 슬로프 중간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는 흉기와 다름없을 정도로 위험하다. 스노보드 위에 앉아서 슬로프를 내려오던 한 이용객은 스키장 안전관리자가 눈에 띄자 황급히 다시 스노보드를 신었다. 이외에도 흡연구역이 아닌 곳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꽁초를 눈 속에 넣는 사람들도 속속 목격됐다.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대중교통·식당·목욕탕·공원 등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지키지 않아 주변을 불쾌하게 만드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일이 가장 자주 발생하는 곳은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이다. 자신만 편하게 가려고 새치기를 하거나 앞선 사람을 밀치는 경우가 많다. 출입구 앞에 서 있을 경우 내리고 타는 사람을 배려해 비켜주거나 잠시 내렸다가 다시 타면 되는데 굳이 버티고 서 있어 승객들을 불편하게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최신영(27)씨는 “지하철 플랫폼에서 스크린도어 바로 앞에 가방을 놓아두고 승강장 뒤편 의자에 앉아 있다가 열차가 들어오면 마치 줄을 서 있던 것처럼 슬쩍 끼어드는 사람들을 종종 봤다”며 “다 같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태도는 참 이기적”이라고 지적했다.
직장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구내식당에서도 ‘나 하나쯤이야’ 하는 마음에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하루에 300~400명이 이용하는 대형 구내식당들은 위생과 식당 종업원의 편의를 위해 “남은 반찬을 한 그릇에 모아 퇴식구에 넣어달라”고 부탁하지만 아예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16일 서울 시내 구내식당 세 곳을 둘러본 결과 이용객들 중 잔반을 국그릇에 모아 퇴식구에 넣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강남구의 한 구내식당에서 조리원으로 일하는 한경자(57)씨는 “손님들이 잔반을 한곳에 모아주면 시간과 노력이 절약되지만 ‘모아서 버려달라’는 말 자체를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며 “손님들이 조금만 도와주면 설거지를 하는 조리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겨울철 추위를 피해 가족단위로 즐겨 찾는 찜질방에서도 ‘민폐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다 부딪혀 다치거나 누워 있는 사람을 밟는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하지만 아이가 조심하도록 주의를 주는 부모들은 많지 않다. 또 보기 민망할 정도로 애정 행각을 벌이는 커플들도 종종 있고 찜질방 내 식당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휴게실로 가져가 음식 냄새가 진동하기도 한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불한증막 사우나에서 근무하는 유현숙(53)씨는 “여러 번 부탁해도 목욕탕에서 염색을 하는 손님들이 도무지 줄지 않는다”며 “염색약의 독한 냄새가 주변으로 퍼지고 공용수건에 염색약이 묻어 피해를 보는 손님들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유씨는 이어 “찜질방에서는 땀을 흘리기 때문에 속옷을 입는 게 기본 매너인데 속옷을 입지 않은 채 찜질복만 입는 사람도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
/홍천=박진용·이재명·양지윤·허세민기자 yong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