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 부총리
대담 =김성수 사회부장 sskim@sedaily.com취임 6개월을 갓 넘긴 김상곤(69·사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50분가량 진행된 인터뷰 내내 특유의 차분하고 조용한 말투로 자신의 교육철학을 설명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절대평가 전환 보류, 유치원·어린이집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 유보 등 주요 정책을 둘러싼 논란을 의식한 듯 “소통 부족이라는 일부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서도 “새 정부의 교육정책 비전을 구체화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인터뷰에서는 학부모의 어깨를 짓누르는 ‘사교육’에서 시작해 입시제도 개혁, 대학 서열화 완화, 미래 인재 육성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먼저 김 사회부총리가 평소 강조해온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 문제가 화두로 제시됐다. “흔히 사교육을 영화관 효과에 비유합니다. 특단의 조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영화관 효과는 맨 앞줄에 앉은 사람이 일어서면 스크린이 가려져 뒷사람도 모두 일어서는 현상을 말한다.
김 부총리의 답변은 조심스러웠다. “현재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서 사교육 시장을 일거에 해결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라면서 “학원 심야시간 제한에 이어 최근 요구가 높아지는 휴일휴무제와 같은 사안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 모두 가장 불편해하고 어려워하는 게 학원 문제”라고 토로한 뒤 “국민 정서와 상식을 감안해 사교육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조절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대화는 자연스레 최근 학부모로부터 “비싼 학원에 아이를 보내란 말이냐”는 반발을 불렀던 유아 영어수업 금지 정책으로 이어졌다. 교육부는 당초 유치원·어린이집 방과 후 영어수업 금지를 추진하다 여론의 역풍에 밀려 ‘원점 재검토’로 한발 물러섰다. 사실상 판단 자체를 유보해버린 것이다.
김 부총리는 유아 영어수업 금지 정책을 둘러싼 ‘소통 부족’을 인정했다. “정책의 취지와 방향, 목적의 타당성을 떠나 과정이나 방법·속도에서 국민과 학부모님의 이해와 지지를 받지 못했다”며 “이번 일을 성찰과 개선의 반면교사로 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아 영어수업 금지 정책은 ‘철회’가 아닌 ‘보류’라고 못 박았다. “영어 금지 방안도 (여전히) 선택지 중 하나로 남아 있다”고 했다. 내년에 영어수업 금지 정책을 재추진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교육부는 각계의 의견수렴을 거쳐 내년 초까지 유치원 방과 후 과정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일부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사설 영어유치원(영어학원) 금지 요구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검토는 하겠지만 (전면 금지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사교육 시장이 가지고 있는 순기능까지 제재하는 것은 어려운 만큼 법적으로 가능한지 검토해야 할 사항입니다.”
학부모에게 가장 민감한 입시제도와 관련해서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다는 심정으로 신중하고 철저하게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입시부담 완화와 공정성 제고를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핵심인 학교 생활기록부 신뢰도 제고를 꼽았다. “학생부 기재 항목을 정비하고 선생님들의 기재 역량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국민이 납득할 만큼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획기적 개선책을 내놓겠다”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학생부 기재 항목을 현행 10개에서 정규 교육과정 중심의 7~8개 항목으로 줄이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기재 폐지 항목은 방과 후 학교 수강내용이나 창의적 체험활동 등 학교 밖에서 이뤄지는 활동들이다. 이들 외부활동은 부풀려지거나 과장될 개연성이 커 학종의 공정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목돼왔다.
“예전에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입시를 생각했지만 지금은 입시가 유치원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공교육만으로 입시 준비가 가능하면 사교육 의존도가 줄어든다는 점은 누구나 알지만 지금까지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전반적인 입시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데 하루아침에 이루기는 어렵습니다. 중장기적인 방향을 제시하면서 단기적으로 무엇을 바꿀 것인가를 결정해나가겠습니다.”
김 부총리는 입시 위주의 교육을 야기하는 근본적인 문제로 꼽히는 대학 서열화에 대해서는 국립대 네트워크와 지방 거점대 육성을 통해 점진적으로 해소한다는 복안을 제시했다. 지방의 주요 국립 거점대를 집중 육성하고 이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 방식으로 지역 국립대를 상향 평준화함으로써 대학 서열화를 완화해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는 “우수한 지역 인재들이 지역대학으로 유입되는 대학 구조를 구축하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다만 ‘국립대 네트워크에 서울대를 포함하지 않으면 서열화 문제가 해소될지 의문’이라는 지적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 더 논의해야 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교육 정책을 두고 ‘교육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우려가 많다. 소득주도 성장, 빈부격차 해소 등을 내걸고 당선된 문재인 정부가 교육 분야에서만큼은 거꾸로 간다는 지적이다. ‘김상곤표 정책’인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 등 특목고 폐지와 내신 절대평가화가 강남 명문고 유입수요를 부추겨 강남 집값을 끌어올린다는 데 일조한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김 부총리는 이런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일반적으로 교육이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교육 정책에 따라 주택시장의 출렁거림은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적체된 (강남 주택) 수요가 폭발하면서 강남 지역이 유독 가파르게 오르는 상황에서 특목고 폐지 정책이 나오니 오비이락이 된 것입니다. 특목고 폐지가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봅니다. 사교육 의존도를 줄이고 공교육을 강화하면 주택시장의 불안감을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 부총리는 문재인 정부 교육 정책의 최대 과제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인재 육성을 꼽았다. 그는 “정부와 기업이 그동안 미래 인재 육성에 소홀하지 않았는지, 자체 반성을 하고 있다”며 “‘STEAM’ 교육 강화 등으로 미래 인재를 키우겠다”고 밝혔다. STEAM은 과학(Science)·기술(Technology)·공학(Engineering)·예술(Arts)·수학(Mathematics)의 융합교육을 일컫는다. 암기 위주 교육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체험·탐구·실험 중심의 수업 방식을 도입해 인문학적 상상력을 기르는 동시에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창조력을 기르는 교육 방식이다. 교육부는 STEAM 교육 연구·선도학교를 지난해 57개교에서 올해 100개교로 대폭 확대하는 등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김 부총리는 자유학년제·고교학점제 도입, 소프트웨어(SW) 교육 필수화, 학생 참여형 수업, 마이스터고 확대 등도 미래형 인재 육성 방안으로 제시했다. 교육부는 올해 전체 중학교의 46%인 1,470개교에서 자유학년제를 운영하고 105개 고교를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로 지정해 시범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고등교육 분야에서는 온오프라인 연계교육 확산 등 교수-학습방법 개선과 혁신선도대학 지원, 평생교육 강화 등을 위해 한국형 온라인 강의 무크(K-MOOK) 확대, 산업계와 연계한 단기 직무교육 프로그램인 한국형 나노디그리(Nano Degree) 시범 운영을 미래 교육 강화 방안으로 제시했다.
김 부총리는 문재인 정부 임기 안에 교육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입시 중심의 경쟁교육으로 치닫다 보니 교육열이 때로는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교육의 양극화가 사회의 양극화를 재규정하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이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공교육 정상화를 통해 문제 해결의 여건과 기반은 조성할 것입니다.”
/정리=김능현·진동영기자 nhkimchn@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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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전남 광주 △1968년 광주제일고 △1976년 서울대 경영학과, 경영학 석·박사 △1983년 한신대 경영학과 교수 △1995년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1999년 한국산업노동학회 회장 △2005년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총장,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 △2006년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공동대표 △2009년 제14·15대 경기도교육감 △2011년 크즐오르다국립대(카자흐스탄) 명예 교육학 박사 △2014년 혁신더하기연구소 이사장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권재민혁신위원장 △2016년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위원장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 국민주권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거대책위원장 △2017년 7월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