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제천 화재 관련 소방공무원 사법 처리 반대’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완벽하지 않은 현장 대응의 책임을 물어 사법적으로 처벌하는 선례가 소방공무원들에게는 재직 기간 중 한 번이라도 현장대응에 실패하면 사법 처리될 수 있다는 작두날이 될 것”이라고 썼다. 소방관이 의지를 상실할 경우 이는 곧 국민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청원은 22일까지 3만명이 넘는 참여자를 모았다.
참사 유가족들의 울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출동 소방관의 임무 수행이 기대에 못 미쳤을 수 있다. 그것대로 확실한 조사가 필요하다. 다만 소방활동에 대해 소방관 개인의 사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다른 문제다.
1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당시 현장 지휘관이었던 충북소방본부장과 제천소방서장을 불러 다그쳤다. ‘왜 2층에 빨리 진입하지 않았는지’ 등등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날 바로 그 행안위가 ‘소방기본법 일부 개정 법률안’ 등 강화된 소방안전 관련법 5건을 처리했다는 것이다. 공동주택에 소방차 전용 주차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이곳에 주차시 과태료 100만원을 부과하는 등의 내용이다. 이들 법률안은 대부분 국회에 제출된 지 1년 이상 지난 것들이다.
제천 참사의 주원인인 스티로폼 소재의 드라이비트는 여전히 다른 건물들의 외벽을 점령하고 있고 막힌 비상구도 그대로다. 지난주 말 서울 종로에서 일어난 여관 화재 사고도 마찬가지 이유다.
현재 전국의 소방관은 4만5,000여명이다. 소방청은 그동안 2만명 증원을 요구해왔다. 2분의1을 늘려달라는 셈인데 이것이 무리하게 생각되지 않은 것은 그만큼 소방관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일했다는 방증이다. 제천소방서는 그동안 법정 기준인 190명의 절반도 안 되는 93명의 인력으로 운영됐다. 사고 발생 후 만만한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구조적 문제는 회피하는 것도 이른바 ‘적폐’다.
‘설리:허드슨강의 기적’이라는 미국 영화가 있다. 2009년 기장 설리(톰 행크스 분)의 여객기가 뉴욕공항을 이륙한 직후 새떼와의 충돌로 엔진이 정지하면서 인근 허드슨강에 불시착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사고 후 설리는 새떼와 충돌한 후 곧바로 귀환하지 않았다고 가혹한 비난을 받는다. 나중에 시뮬레이션을 하니 귀환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영화는 충돌 직후 여객기 조종실의 30초를 긴박하게 보여준다. 설리는 공항 귀환을 포기하고 가까운 강 위로 착륙시켰다. 탑승객 155명은 모두 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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