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국제 원유가격이 지난 몇 달 동안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해 1·4분기에서 3·4분기까지 배럴당 50달러를 중심으로 등락했으나 11월 60달러를 넘었고 올해 1월에는 65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이렇게 국제유가가 상승한 데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세계 석유시장의 수급 균형 회복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지난 2014년 이후 공급 과잉과 저유가 상황에서도 시장점유율 확보 경쟁을 벌인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지난해부터 러시아 등 비OPEC 산유국들과 함께 감산에 돌입했습니다. 석유 수요는 세계 경기가 확장세를 보이면서 예년보다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이에 따라 세계 석유시장은 지난해부터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북반구의 이상 한파로 인한 난방용 석유 수요 급증이 최근의 유가 상승에 한몫했습니다.
원유 생산 지역의 정세 불안과 일부 산유국의 공급 차질도 유가 상승의 원인이 됐습니다. 이라크에서는 쿠르드자치정부(KRG)의 독립투표로 중앙정부와의 갈등이 지속되면서 북부 쿠르드 지역의 원유 생산이 줄었습니다. 또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한 베네수엘라는 원유 생산을 위한 투자자금 부족과 석유 인프라 노후화로 원유의 생산과 수출이 감소했습니다. 이란에서는 지난해 말 생활고 등을 이유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해 원유 공급 차질에 대한 우려를 더했습니다. 달러화 약세와 원유 선물시장의 투기성 자금 유입도 유가 상승의 원인이 됐다고 봅니다.
향후 2018년 국제유가도 석유 수급과 세계 경제의 상황, 달러화의 가치, 지정학적 사건, 기후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이 여전히 유가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입니다.
세계경제 회복세·亞 가파른 성장
이상 한파까지 겹쳐 수요 급증
이라크·베네수엘라·이란 등
내전 여파에 공급 위축도 한몫
☞ 수급 균형 전망 근거는
베네수엘라 위기땐 큰 충격 우려
감산 합의 연말 종료 변수있지만
OECD 재고 평균 5년치 웃돌고
美 셰일오일 생산 꾸준히 늘어
배럴당 60달러선 유지할 듯
올해 세계 석유 수요는 전년 대비 하루 150만배럴 증가해 지난해에 이어 견고한 증가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수요 증가는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아시아 신흥국들이 주도합니다. 공급 측면에서는 올해도 OPEC의 감산과 미국의 셰일오일 증산이 힘겨루기를 계속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원유 생산의 선행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원유시추기 수는 유가 상승에 반응해 지난해 11월 증가세로 돌아섰습니다. 또 지난해 말의 유가 상승은 셰일오일 생산 업체들로 하여금 손익분기점을 넘는 가격에서 2018년 유가에 대한 헤지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미국의 원유 생산은 연중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올해 비OPEC 전체 공급은 미국의 생산 증가에 힘입어 하루 130만배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처럼 비OPEC 공급 증가분이 수요 증가분의 대부분을 충당함에 따라 OPEC은 감산 합의를 철저히 지켜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감산이 올해 12월 말 종료될 예정이므로 감산 출구전략이 확실하지 않으면 감산준수율이 낮아져 OPEC의 공급이 지난해보다 증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올해 석유의 수요와 공급은 겨우 균형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문제는 석유시장에 누적돼 있는 재고입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석유 재고는 여전히 과거 5년 평균치를 웃돌고 있습니다. 석유시장의 수급이 가까스로 균형을 이룬다면 재고가 크게 감축되기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올해도 유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지정학적 불안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남미 최대의 산유국 베네수엘라의 위기가 심화하면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이 급격히 감소해 국제유가에 큰 충격을 줄 수 있습니다. 달러화 가치는 강세 요인과 약세 요인이 교차해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돼 유가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보입니다.
종합해 보면 올해 국제유가는 OPEC의 감산과 신흥국의 수요 증가에도 미국 등 비OPEC 공급 증가와 누적된 석유 재고로 크게 상승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2018년 국제유가는 연중 등락을 거듭하겠지만 두바이유 기준 지난해의 배럴당 53달러보다 소폭 상승한 배럴당 60달러 수준에서 연평균 가격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물론 세계 경기 확장의 가속화로 석유 수요가 예상보다 더 증가하거나 지정학적 사건에 따라 공급 차질이 발생하면 유가는 전망치보다 더 높아질 것입니다.
어쨌든 국제 유가는 2016년을 저점으로 반등하기 시작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유가 상승은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가계 부문에서는 실질구매력 악화로 소비지출이 위축되고 기업 부문에서는 생산비 증가로 투자지출이 위축됩니다. 산업별로는 부가가치 생산 단위당 석유 사용량이 많은 업종들이 유가 상승으로 더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우리 경제가 유가 등락의 충격을 적게 받도록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는 구조로 전환해나가는 노력이 요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