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休 -경북 의성]최치원 흔적 깃든 고운사... 관수루 처마 본뜬 낙단보

■고운사
임란때 부상병 치료하던 병참기지
온갖 수난에도 문화재 고스란히 남아
■낙단보
낙동면·단밀면 첫 글자 합쳐서 명명
마애보살 좌상 발견돼 설계 바꾸기도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681년)에 의상조사가 창건했다. 창건 당시 이름은 고운사(高雲寺)였지만 200여년 후 고운(孤雲) 최치원이 이곳에서 머문 것이 인연이 되어 그의 호를 따라 고운사(孤雲寺)로 고쳐 부르고 있다.
의성을 방문한 날은 몹시 추웠다. 취재 하루 전에 도착, 읍내에 숙소를 잡아 잠을 청한 후 이른 새벽 일어나 외곽에 위치한 고운사로 방향을 잡았다. 도로는 곳곳이 빙판이었다. 속도를 내다 줄이다를 반복하며 도착한 절은 떠오르는 해가 산에 가려 그늘이 져 있었다. 인적이 끊긴 산사에는 오로지 기자뿐이었다. 절 깊숙한 곳까지 차를 끌고 들어가 세워 놓고 내리니 반겨주는 것은 추위와 칼바람, 그리고 눈뿐, 사위는 적막 속에 잠겨 있었다.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681년)에 의상조사가 창건했다. 창건 당시 이름은 고운사(高雲寺)였지만 200여년 후 고운(孤雲) 최치원이 이곳에서 머문 것이 인연이 돼 그의 호를 따라 고운사(孤雲寺)로 고쳐 부르고 있다. 이후 고려 때인 948년(정종 3년) 중창했고 1018년(현종 9)에 다시 손을 봤다가 조선조에 들어와 1695년(숙종 21년)에 다시 중수했다. 잇단 중창으로 제 모습은 남아 있지 않은 셈인데 1100년 전에 건립된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이후에도 수난이 끊이지 않아 1835년(헌종 1년)에 불탄 것을 재건했다. 연이은 환란에도 경내에는 국가 및 지방지정문화재와 30동의 건물이 남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인데 그 와중에도 이 절은 조계종 16교구 본사로 2개시 3개군에 걸친 60여개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 고운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군의 식량을 비축하고 부상병들을 모아 치료하던 병참기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고운사에 들어가 일주문을 통과하면 제일 먼저 객을 맞는 것은 최치원이 세웠다는 가운루다. 예전에는 수량이 풍부해 누각 아래로 계곡 물이 많이 흘러넘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한겨울 추위에 계곡은 돌덩이처럼 얼어붙어 있을 뿐 물 흐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계곡에 잠기는 부분에는 돌기둥을 놓고 그 위로는 나무 기둥을 이어서 누각을 받쳐놓았다. 이제는 수량이 전 같지 않아 예전 같지는 않지만 건물 자체의 정교한 아름다움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절을 한 바퀴 돌았더니 새벽 매운 추위에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대웅전을 촬영할 만한 위치가 나오지 않아 남동쪽에 있는 언덕 위의 계단으로 올라서 보니 나뭇가지가 절을 가렸다. 몇 컷만 찍고 내려와 추위를 피하려 차에 올라타니 살 것 같았다. 시동을 걸고 앉아 산사의 아침을 바라보며 몸을 녹인 후 낙단보로 향했다.

낙단보는 4대강 사업때 설치된 낙동강의 여러 보중 하나로 관수루의 처마를 본 뜬 모습으로 설계됐다.
낙동강변 낙정나루의 북쪽에 있는 관수루의 창건연대는 고려 중엽으로 추정된다.
낙단보는 4대강 사업 때 설치된 낙동강의 여러 보 중 하나로 관수루의 처마를 본뜬 모습으로 설계됐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길이는 286m로 다기능 보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2009년 11월23일 건립 공사가 시작된 후 1년 만인 2010년 10월14일 발파공사 중 단밀면 생송리 전망대 건립예정지에서 고려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보살 좌상이 발견돼 설계가 변경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낙단보라는 이름은 상주시 낙동면의 ‘낙’자와 의성시 단밀면의 ‘단’자를 합쳐 ‘낙단보’라고 이름을 붙였다. 낙단보에는 소수력 발전기 2기와 어도가 나 있는데 이 발전기들은 4인 가족 기준 3,500세대가 사용할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4대강을 만들면서 낙동강 12경을 조성했는데 12경 중 낙동강의 보가 8개를 차지하고 있다. 흐르는 낙동강을 가운데 두고 서쪽에는 상주시, 동쪽에는 의성군으로 나누어지는데 경계선인 낙동강의 상류는 완전히 얼어붙어 하얀 눈을 뒤집어쓴 채로, 아래쪽 낙단보 인근은 시퍼런 강물이 춤을 추며 두 지역의 경계선 구실을 하고 있다. 의성군 쪽 전망대에 올라 강줄기를 굽어봤는데 칼바람에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들어 오래 버틸 수가 없었다.

현대의 기술로 축조된 낙단보를 살펴본 후 하류 쪽으로 400m를 이동하면 시간을 거슬러 관수루 구경까지 할 수 있다. 낙동강 변 낙정나루의 북쪽에 있는 관수루의 창건연대는 고려 중엽으로 추정된다. 이후 조선조로 접어들어 1734년(영조 10년)에 중건됐고 1834년도(헌종 11년)에 홍수로 떠내려가 없어진 것을 1900년에 복원했다. 지금의 관수루 자리가 홍수로 떠내려간 관수루 자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만약 같은 자리에 있었다면 엄청난 대홍수가 휩쓸고 갔을 터였다. /글·사진(의성)=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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