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4강 신화 쓴 정현] 정현의 파죽지세…월드컵 4강 신화와 닮았네

고비때마다 강호 꺾고 준결승행
“국민 통합 선도” 네티즌 격찬
테니스 인기 적은 韓서 쾌거에
‘정현 키즈’ 속속 등장 전망도

24일 서초구 서울고에서 학생들과 테니스팬들이 정현의 호주오픈 8강 경기를 시청하며 응원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가 월드컵 4강에 진출한 것만큼 기쁘다.”

24일 정현(22·삼성증권)이 113년 전통의 메이저 테니스대회 호주오픈에서 ‘4강 신화’를 쓰자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이런 반응이 쏟아져나왔다. “평창올림픽이냐 평양올림픽이냐를 놓고 정치권이 대립하는 가운데 정현이 국민통합에 앞장섰다”는 의견도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최고 권위의 국제 스포츠대회에서 누구도 쉽게 기대하지 않던 깜짝 결과를 냈다는 점에서 정현의 성과는 2002년 국제축구연맹(FIFA) 한일 월드컵에서의 4강 신화를 떠오르게 한다. 2002년 대회 전까지 16강에조차 올라본 적 없던 한국 축구는 조별리그에서 한 수 위로 평가되던 폴란드와 포르투갈을 누른 데 이어 16강에서 전통의 강호 이탈리아를 드러눕혔다. 거기까지인 줄 알았는데 8강에서는 무적함대 스페인마저 넘어섰다.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정현이 1회전부터 차례로 격파한 미샤 즈베레프(34위·독일), 다닐 메드베데프(53위·러시아), 알렉산더 즈베레프(4위·독일)는 한국 축구가 상대했던 강호들과 견줘 모자라지 않는 실력자들이다. 16강에서 넘어선 노바크 조코비치(14위·세르비아)는 축구로 치면 당시의 이탈리아나 스페인에 비견될 만하다. 조코비치는 2016년 독보적인 세계랭킹 1위를 달리다 지난해 부상 등으로 일찍 시즌을 접기는 했지만 올해 들어 다시 예전의 기량을 되찾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우상이던 조코비치를 정현은 3대0으로 꺾었다. 4강에서 만나는 로저 페더러(2위·스위스)는 한국 축구의 준결승 상대였던 독일을 떠오르게 한다.


24일 8강은 사실 조코비치전보다 더 부담스러웠다. 객관적 전력 차가 큰 조코비치에게 ‘밑져야 본전’이라는 각오로 부딪쳤다면 8강 상대 테니스 샌드그렌(27)은 자신(58위)보다 랭킹이 낮은(97위) 선수였다. 정현은 그러나 세계 8위 스탄 바브링카(스위스)와 5위 도미니크 팀(오스트리아) 등을 잡고 올라온 미국발 돌풍을 2시간29분 만에 3대0으로 잠재웠다.

외국인 감독 거스 히딩크가 월드컵의 기적을 조련했다면 정현의 기적 뒤에는 지난 시즌 뒤 동계훈련부터 정현을 지도한 네빌 고드윈(남아프리카공화국) 코치가 있다. 고드윈 코치는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정현을 처음 봤을 때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그는 세계랭킹이 낮은 편이 아닌데도 얼마든지 더 기량이 향상될 여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를 가르치게 된 것이 매우 기뻤다”고 말했다. 대한테니스협회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지도자인 손승리 코치도 고드윈과 함께 정현을 돕고 있다.

월드컵 축구 4강 신화가 홈에서 빚어진 것과 비교해 정현의 4강 신화는 원정에서 이룬 것이다. 호주오픈은 1930년에 시작된 월드컵 축구보다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4대 그랜드슬램(메이저) 대회 통산 11승에 빛나는 ‘테니스 전설’ 로드 레이버(80·호주)는 자신의 이름을 딴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이날 정현의 승리에 기립박수를 보냈다.

월드컵 축구 4강 신화를 넘어 정현은 아시아 남자 테니스 최초의 메이저 우승까지 넘볼 위치에 섰다. 이런 정현을 피겨의 김연아, 수영의 박태환 급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국내 저변이 취약한 환경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불세출의 스타라는 점에서 닮았다.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스포츠임에도 국내에서는 인기가 미미했던 테니스는 ‘정현 효과’를 등에 업을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연아 키즈’처럼 테니스를 배우려는 ‘정현 키즈’가 속속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0대 초반에 전성기를 열어젖힌 정현은 2020년 도쿄올림픽 메달 또한 바라볼 만하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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