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이면 회사설립 뚝딱...디지털화로 이룬 창업왕국

■ 이젠 미래를 이야기하자 <7·끝>인구 125만의 창업천국
모든 업무 온라인 처리 가능...창업 밀도 전세계 3위
법인세 폐지·과감한 지원...글로벌 투자자금 끌어들여
小國 한계 극복위해 만든 전자시민권 실험도 대성공

지난해 12월 북유럽 최대 스타트업 행사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 ‘스타트업 데이’에 참가한 한 남성이 전시품을 사용해보고 있다. /사진=스타트업데이 홈페이지 캡처


‘창업 천국’으로 불리는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큰 비즈니스 행사는 신생 기업들이 투자설명회(IR)를 열고 각종 경연을 벌이는 ‘스타트업 데이’다. 지난해 12월8일 열린 스타트업 데이에도 기업가·투자자·시민 등 2,600여명이 모여 한바탕 축제를 벌였다.

이날 행사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순간은 3분 IR 경연대회였다. 세 곳의 기업이 승리를 거머쥐었는데 그중에서도 16세에 불과한 소년 창업자가 이끄는 ‘세이프색(Safe Sack)’이라는 기업이 눈길을 끌었다. 나이 어린 창업자의 패기 넘치고 조리 있는 발표도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무엇보다 돋보인 것은 회사가 구현한 기술 수준이다. 세이프 색이 주력 제품으로 선보인 가방은 지문 인식으로 여닫을 수 있고 전자 추적 시스템을 장착해 잃어버려도 쉽게 찾을 수 있는 혁신기술을 장착해 큰 호응을 얻었다.

한국으로 치면 입시 준비가 한창일 나이에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해 자기 회사를 꾸렸다는 사실은 에스토니아가 왜 ‘창업 천국’이 됐는지를 엿볼 수 있는 단편적인 사례다. 전 세계 차량 공유 서비스 시장에서 우버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는 ‘택시파이(Taxify)’ 역시 최고경영자(CEO) 마르쿠스 빌리그가 열아홉에 창업한 회사다.


창업의 ‘메카’로서 에스토니아의 면모는 숫자로도 잘 나타난다. 북유럽 발트 지역에 있는 이 나라는 인구 125만명, 세계 순위로는 158위에 그치는 소국이지만 노동 인구 1,000명당 창업기업 수는 세계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오랫동안 옛 소비에트 연방에 소속돼 있던 에스토니아는 1991년 독립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가정에 전화기가 없을 정도로 가난한 나라였다. 열악한 경제 조건에서 독립 국가로서 첫발을 내디딘 에스토니아가 성장을 위해 찾은 생존 전략은 정보통신(ICT) 기반의 창업 활성화였다. 에스토니아에서는 모든 절차를 온라인화한 덕분에 200만유로만 내면 30분 이내로 창업 등록 절차를 끝낼 수 있다. 빠르면 10분 안에도 가능하다. 게다가 배당을 제외한 회사 이윤에 대한 법인세를 폐지하는 등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창업 붐’을 이끌었다. 현재 에스토니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세제 경쟁력이 가장 좋은 나라다.

2007년에는 ‘에스토니아 개발펀드’를 세워 스타트업을 집중 지원하기 시작했다. 사업 계획이 유망하기만 하면 다른 조건은 보지 않고 민간 투자액의 50%를 매칭해 지원한 것이다. 정부가 마중물을 적극적으로 대니 글로벌 민간 벤처 자금도 몰려들었다. 덕분에 2006년 569만유로에 그쳤던 스타트업 투자금은 지난해 2억6,998만유로로 급증했다. 창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도 힘썼다. 현지 탈린대와 함께 만든 스타트업 양성 공간인 ‘테노폴’에는 150개 이상의 기업이 입주해 있다. 이곳을 방문했던 이영주 산업연구원 박사는 “우리나라의 산업 클러스터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우리보다 대학·기업 간 협업이 훨씬 유기적으로 이뤄지고 각종 실험과 기술 사업화를 돕는 인프라가 잘 확충돼 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에스토니아가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각광 받게 된 데는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전자정부 시스템이 큰 몫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나라는 2000년 세계 최초로 인터넷 접속을 기본권으로 선언한 후 ‘모든 업무를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사회’를 구현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전자주민증을 만들었고 국가기관·은행·보험·병원 등 데이터베이스를 망라한 ‘X-로드’ 체계를 구축했다. 그 결과 99%의 공공서비스를 인터넷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업무의 디지털화는 자연스레 시간과 비용의 절감으로 이어졌다. 창업 등록 절차가 10분밖에 안 걸리는 비결도 여기 있다. 에스토니아에서는 창업 비용도 1인당 국민소득의 1.2%에 그친다. 이는 한국(14.6%)의 10분의1 수준이다.

이에 더해 에스토니아 정부는 2014년 말 ‘전자시민권(E-Residency)’이라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실험에 나섰다. 인구가 적어 경제 규모를 키우기 어렵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가상 거주권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에스토니아를 방문할 필요 없이 온라인으로 50유로만 내면 시민권을 주고 신분증을 받으면 법인 설립과 은행 거래 등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에스토니아 전자시민권을 발급 받은 사람은 전 세계 37개국에서 2만명이 넘었고 이들에 의한 법인 설립은 4,000건이 넘었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오는 2021년까지 2만개의 기업이 전자시민권을 토대로 설립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글로벌 구인·구직 전문 스타트업 ‘자바티칼(jobbatical)’의 카롤리 힌드릭스 대표는 “오늘 인터뷰한 외국인을 2주 안에 에스토니아 사무실에 앉힐 수 있다”며 “에스토니아 정책은 재능 있는 인재 확보의 중요성을 알고 확실하게 뒷받침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서민준·박민주기자 morand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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