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 국회’ ‘개점휴업’.
국회 회기만 열렸다 하면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말이다. 정쟁만 일삼다 민생은 챙기지 않고 문을 닫는 게 국회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그러면 의원들은 항변한다. 졸속입법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신뢰하기 힘들다. 법을 관리할 기관이 스스로 법을 어기는 게 국회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이제 최고 권력자도 못 지키면 쫓겨나는 ‘헌법’마저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다.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국민투표법’ 논란이 그렇다. 지방선거 동시 개헌 국민투표의 예상치 못한 걸림돌이 되면서 국회의 직무유기가 드러났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4년 7월 국민투표법이 재외국민의 투표권을 제한한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국회는 2015년 말까지 법을 개정해야 했지만 논의를 미뤘다. 결국 법이 효력을 상실했고 재외국민의 국민투표권은 박탈됐다. 국회는 이후 2년이 넘도록 손을 놓고 있었다. 입법기관이 국민의 투표권을 빼앗았지만 이 문제를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명백한 직무유기다. 더욱이 국가적 대사인 개헌을 추진한다는 정부 여당은 이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해 10월부터 대체입법 의견서를 내며 문제를 제기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죽하면 정부 내부에서도 “여당은 그동안 뭐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쓴소리가 터져나온다.
야당도 문제다. 국민의 투표권이 박탈됐는데도 남의 일인 양 강 건너 불구경이다. 나아가 이를 정쟁의 도구로 삼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개헌안 지방선거 동시투표를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은 이를 협상 카드로 쓰기 위해 법 개정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결국 국민의 권리를 볼모로 삼겠다는 것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뒤늦게 26일 “국민투표법이 아직 개정되지 않은 것이 참으로 부끄럽고 국민께 면목없는 일”이라고 사과했다. 이 사과가 정 의장만의 사과로 그치지 않길 바란다. 국민이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것은 헌법을 무시한 권력을 경고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류호기자 rh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