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비·외로움에 입원했다 참변 희생 컸던 임대아파트 주민들

병원 인근 가곡동 주공 1단지
공식확인 사상자만 9명...더 늘듯
대부분 거동 불편한 독거 노인들
한파·외로움 피해 병원갔다 참변

28일 밀양 세종병원 화재로 다수의 피해 주민이 발생한 세종병원 인근 한 임대아파트에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밀양=이두형기자


“여기 2단지는 한 명도 안 죽었는데 우리가 사는 1단지는 13명이나 죽었어.”

밀양 세종병원 인근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화재 참사 피해자들 가운데 같은 단지에서 함께 살던 이웃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화재 참사 이틀 만인 지난 27일 기자가 찾은 가곡동 주공아파트에는 오가는 사람이 없어 적막감이 감돌았다. 이곳에서 만난 최동묵(63)씨 왼쪽 가슴에는 이웃 사촌으로 지내온 이들을 기리기 위한 검은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근조’라고 적힌 리본이 달려 있었다. 최씨는 “이곳 임대아파트에 사는 분들은 대부분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라며 “최근 한파로 추위에 떨거나 거동이 불편해 식사하기 어려운 분들이 병원을 찾았다가 변을 당했다”고 전했다.


28일 밀양시에 따르면 세종병원 화재 피해자들 가운데 주민등록상 가곡동 주공아파트 1단지 주민은 모두 9명으로 확인됐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피해자까지 드러나면 1단지 주민 희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시청 관계자는 “이번 참사 희생자들 중 요양병원에 장기입원해 계신 분들은 임대아파트에서 나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공식 확인된 이들 외에 주공아파트에 살던 희생자가 더 많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임대아파트 한 단지에서만 사상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이유는 경제적 빈곤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아파트는 총 447가구로 입주자 대부분이 월 40만~60만원의 기초생활지원금으로 살아가는 저소득 독거노인들이다. 실제 희생자들 대부분은 거동이 불편하지만 간병비를 쓸 여유가 없고, 겨울철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아파트에 사는 최모(81)씨는 “노인들은 겨울에 추우면 따뜻한 곳을 찾는다”면서 “난방비를 아끼고 한편 적적하게 지내는 것보다 따뜻하고 밥 잘 나오는 병원에서 동네 이웃들과 말동무 할 수 있어 많은 분이 병원을 찾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임대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13명이라는 다수의 사망자가 나왔음에도 의외로 담담한 표정이었다. 이 아파트에 사는 김모(84)씨는 “여기 사는 노인들은 가족도, 돈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사람 죽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며 “하루가 멀다하고 노인들이 죽어 나가 큰 감흥이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들은 이번 화재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독거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해소해 주지 않는다면 더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밀양시는 지난해 기준으로 65세 이상 비율 24.8%로 초고령사회(노인 20% 이상)에 들어선 상태다. 특히 독거노인 수는 해마다 늘어 지난 2014년 7,913명에서 2016년 8,264명으로 증가했다. /밀양=박우인·이두형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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