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페더러(오른쪽)가 28일 호주오픈 테니스 남자단식 결승에서 우승한 뒤 시상식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왼쪽은 준우승자 마린 칠리치. /멜버른=EPA연합뉴스
십수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기량처럼 우승의 감격은 언제나 가슴 벅찬가 보다. 28일 호주 멜버른의 로드 레이버 아레나. 시즌 첫 번째 테니스 메이저대회인 호주오픈 결승에서 3시간 4분간의 접전 끝에 우승한 ‘테니스황제’ 로저 페더러(37·스위스)는 시상식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세계랭킹 6위인 결승 상대 마린 칠리치(30·크로아티아)에 대한 감사와 관중석을 가득 메운 팬들에 대한 인사를 마친 페더러는 아내와 코치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린 뒤 “저를 있게 한 우리 팀에 감사한다”고 말하면서 왈칵 눈물을 쏟았다. 테니스 선수 출신인 페더러의 아내 미르카는 딸·아들 쌍둥이의 엄마다. 관중석의 ‘테니스 전설’ 로드 레이버(80·호주)는 흔치 않은 페더러의 눈물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세계 2위 페더러는 이날 우승으로 남자 선수 최초로 메이저 통산 20회 우승을 채웠다. 지난 2003년 윔블던 우승을 시작으로 15년에 걸쳐 쌓은 금자탑이다. 페더러 다음은 16회 우승의 라파엘 나달(1위·스페인). 나달은 부상 탓에 이번 대회 8강에서 탈락했다. 페더러는 특히 호주오픈에서 여섯 차례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 대회 2년 연속 정상은 2006·2007년에 이어 11년 만이다. 호주오픈 6회 우승은 로이 에머슨(호주),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와 같은 남자단식 최다 우승 타이기록이기도 하다. 또 만 36세 5개월인 페더러는 호주오픈 최고령 남자단식 우승 2위 기록도 세웠다.
1세트를 불과 24분 만에 6대2로 마친 페더러는 이후 6대7, 6대3, 3대6, 6대1의 스코어로 3대2 승리를 완성했다. 우승상금은 400만호주달러(약 34억5,000만원). 윔블던 8회, US오픈 5회, 프랑스오픈 1회 우승을 자랑하는 페더러는 시즌 첫 메이저를 우승으로 출발하면서 2년 연속 메이저 멀티 우승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2016년 무릎 부상 이후 은퇴설에 시달리기도 했던 페더러는 지난해 호주오픈과 윔블던에서 우승하며 완벽에 가까운 부활을 알렸다. 당시 무릎 부상은 쌍둥이를 목욕시키려다 입은 것이었다.
페더러는 이번 대회에서 더 완벽에 가까웠다. 1회전부터 8강까지 5경기 연속 3대0 완승을 거뒀고 준결승에서는 정현을 2세트 기권승으로 눌렀다. 이번 대회 들어 세트 허용은 결승 두 세트가 전부다. 칠리치는 지난해 윔블던 결승에서 페더러가 1시간42분 만에 3대0으로 돌려세웠던 상대인데 이번에는 간단치 않았다. 타이 브레이크 끝에 한 세트를 만회한 칠리치는 4세트 1대3에서는 5게임을 연속으로 따내는 저력을 보였다. 일곱 살 많은 페더러의 체력 고갈이 의심스러웠다. 페더러는 그러나 벼랑에서 오히려 더 힘을 냈다. 5세트에서 칠리치의 첫 번째 서브 게임을 가져가는 등 6대1로 간단히 경기를 마무리, 20번째 대관식에서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