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화탄소는 아마도 가장 유명한 기후 변화 화학물질일 것이다. 그러나 수술실의 환자를 마취시킬 때 쓰는 가스의 기후 변화 효과는 이산화탄소의 몇 배나 된다. 의료계는 수술을 위한 진정제 투여, 의료용품 제조, 병원의 전력 공급 등의 작업을 할 때 온실 가스를 배출한다.
미국의 전체 온실 가스 배출량 중 10%가 보건 체계에서 배출된다. 영국의 경우에도 국립 보건 서비스의 추산에 따르면 보건 체계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중 5%가 마취제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미국 병원들이 주로 사용하는 마취 가스는 아산화질소, 세보플루란, 이소플루란, 데스플루란 등 4가지다. 이것들은 인간이 흡입하고 배출할 때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 배출할 때도 흡입할 때의 상태를 거의 유지하고 있다. 그 상태대로 진공 시스템을 통해 수술실에서 배출되어 외부로 나간다.
이러한 가스들이 병원 밖으로 나가면, 이산화탄소의 몇 배나 되는 지구 온난화 효과를 발휘한다. 대기 중의 열을 붙잡아두는 효과가 그만큼 더 강하다는 뜻이다. 환자를 1시간 마취시키는 데 쓰이는 양의 아산화질소의 지구 온난화 효과는 같은 양의 이산화탄소의 300배에 달한다. 아산화질소는 대기 중에서 약 150년 동안이나(이산화탄소는 최대 200년) 머문다. 아산화질소는 오존층도 파괴한다. 데스플루란은 대기 중에 10년 정도만 머물러 있지만, 지구 온난화 효과는 이산화탄소의 3,000배다. 좀 더 와 닿는 표현을 쓰자면, 중형 병원 한 개가 1년에 배출하는 온실 가스는 자동차 1,200대 분량에 달한다. 8시간 분량의 데스플루란 가스의 온실 효과는 자동차 116일간 운행에 상당한다. 같은 분량의 이소플루란 및 세보플루란 가스의 온실 효과는 자동차 5~10일간 운행에 상당한다. 중형 병원 한 개가 1년에 배출하는 온실 가스는 자동차 1,200대 분량에 달한다. 미국 직업안전보건국은 병원 및 수술실에서 이런 가스의 사용을 줄일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건물의 이들 가스 배출량을 규제하는 규칙이 없다. 마취 가스는 파리 기후 협약의 규제 대상이 아니다. 파리 기후 협약은 지구 온난화를 완화하기 위한 국제 협약이다. 아산화질소는 오존층 파괴 물질인데도 오존층 파괴 물질을 규제하는 UN 조약인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의 규제를 받지 않았다.
예일 대학의 마취학 교수이자 마취학과의 지속 가능성 부장인 셔먼은 이들 가스가 의학에서 필수품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에 지속 가능성 논의에서 자주 배제된다고 생각한다. 아산화질소와 이소플루란은 세계보건기구에서 정한 필수 의약품이다. 그러나 셔먼에 따르면 이런 의약품의 대체재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 의약품에 관한 협정과 규제도 만들 수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 대체재
마취제에 대한 공식적인 규제나 감독은 없지만, 그 지구 온난화 효과에 대한 인식은 점차 널리 퍼져가고 있기에 미국 내 여러 병원들은 더욱 환경 친화적인 대체 마취제를 사용하려 하고 있다.
셔먼이 일하는 예일 뉴 헤븐 병원은 데스플루란의 사용을 중지했다. 이러한 조치에는 이 가스가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셔먼의 연구가 크게 기여했다. 셔먼은 “이 가스는 지구 온난화에 큰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매우 비싸다. 환경적 관점 뿐 아니라 경영학적 관점에서 이 가스를 퇴출시키자고 주장하기는 쉬웠다”고 말한다.
의료 그룹 ‘카이저 퍼머넌트’는 소속 내과 의사들과 마취과 의사들에게 데스플루란의 환경적 위험성을 교육한 이후, 북캐롤라이나 지역에서만 데스플루란 사용량을 60% 줄일 수 있었다. 북캐롤라이나 카이저 퍼머넌트의 마취과장단 의장인 앨런 즈네이머는 “앞으로 수 년에 걸쳐 데스플루란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한다. 즈네이머는 데스플루란은 아직 사용 중인 세보플루란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사용량을 줄여도 의학적인 영향은 전혀 없다고 말한다.
위스콘신 대학 지속가능 의료 부장인 마취과 의사 카린 주에그에 따르면, 이 대학은 데스플루란을 완전 제거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카이저 퍼머넌트와 마찬가지로 교육 캠페인을 시작하여 점차 그 사용량을 줄여가고 있다.
주에그는 “나는 데스플루란을 사용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일부 의약품 공급업자들의 압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 대학의 방침이 계속 지켜지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위스콘신 대학의 마취 가스 수납용기 대부분에는 지구 온난화 위협을 강조하는 라벨이 붙어 있다. 주에그에 따르면 이 라벨들이 붙은 이후 마취 가스의 사용량이 이산화탄소 환산 연간 40억kg가 줄었다고 한다. 900대의 차를 없앤 것과 동일한 효과다. 주에그에 따르면 마취과 의사들은 이들 가스를 덜 낭비하게 되었고, 가스 선택시부터 더욱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고 한다. 주에그는 이러한 자료를 학회지 ‘마취 무통증(Anesthesia & Analgesia)’지에 투고했다.
셔먼은 “우리는 물자를 낭비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은 풍요한 국가라 물자의 가격을 신경 쓰지 않는다. 게다가 환경적 영향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낭비를 줄인 결과 생기는 금전적 이익은 분명 존재한다. 위스콘신 대학은 월 2만 달러씩을 절약하고 있다. 예일 뉴헤븐 대학 역시 데스플루란을 없앰으로서 1년에 수 십만 달러를 절약하고 있다.
마취과 의사들은 수술실에서 아산화질소도 가급적 줄이고 있다. 그러나 마취과 의사가 없는 경우가 많은 치과나 산부인과 등에서는 아산화질소가 아직 많이 쓰이고 있다. “아산화질소는 마취과 의사가 아닌 사람들도 오랫동안 안전하게 사용해 왔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한 번 사용한 마취 가스는 다른 것으로 바꾸지 못한다. 따라서 아산화질소의 훌륭한 대체제는 없다” 그러나 수술실에서는 이미 사용한 마취 가스를 교체 가능하다. 셔먼은 마취 가스가 완전히 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사들이 정맥 마취 또는 국소 마취를 쓸 수 있는 경우도 있다.
● 치료의 기준
최상의 환자 진료를 포기하면서까지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는 없다. 그러나 셔먼은 치료의 품질을 훼손하지 않고도 환경적으로 더 나은 마취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경우 다른 여러 가지 약을 사용해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리고 환자는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셔먼은 “생각할 시간도 없이 긴급히 치료를 요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치료 방식을 고를 여유가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경우 마취과 의사들은 환경을 좀더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환경만을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환경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환경은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즈네이머는 마취 방식의 전환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새로운 방식에 대한 거부감을 지적한다. “새로운 방식이나 다른 방식을 시도할 때는 두려움이 따르기도 한다.”
즈네이머는 과거에 쓰이던 마취 가스를 없애는 것이 의학적으로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기존 가스를 줄이자 환자들은 수술 후에 메스꺼움을 덜 겪는 것 같다. 그것은 환경과 환자에게 모두 유익하다. 우리는 가장 좋고 안전한 마취 방식을 찾고 있다.” 셔먼에 따르면 마취제로 인한 오염을 줄이는 방식은 분명하다. “아황산질소의 사용량을 가급적 줄이고, 정맥 마취 및 국소 마취를 가급적 늘리며, 낭비를 막기 위해 철저히 주의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다. 다만 게을러서 못 했을 뿐이다.”
● 재사용과 재활용
방식 변경 및 낭비 감소와는 별도로, 이미 배출된 가스를 포집해 제거하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마취로 인한 대기 오염 감소를 위한 타당한 방식이 될 것이라고 셔먼은 말한다. 예를 들어 스웨덴에서는 여러 산부인과에서 분만 수술 과정에서 사용된 아황산질소를 포집하는 장비를 쓰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는 이런 장비가 없다.
코펜하겐 대학의 화학자 매튜 존슨이 이메일로 밝힌 바에 따르면 가스 제거는 세보플루란, 이소플루란, 데스플루란의 경우 이론적으로 타당하다. 존슨은 광선을 사용하여 마취 가스를 제거하는 시제품을 만들었으며, 이 시제품을 개량해 의료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연구팀들은 마취 가스를 포집 및 정화해 재사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마취과 의사이자 아네스테틱 가스 리클레메이션 사의 창립자인 베리가 개발한 시스템은 사용된 가스를 응축하여 포집한다. 마취 가스를 응축시켜 액체 상태로 만든 다음 금속제 드럼통 속에 보관한다. 이 액체를 증류하여 원상복구하면 재판매 및 재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어디에서도 쓰이고 있지 않다. FDA가 재활용된 마취제, 더 나아가서 재활용된 의약품의 사용을 일절 승인하지 않은 것이 주원인이다. 베리는 4년 전 FDA와 접촉했고, FDA가 이 아이디어에 매우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내 아이디어를 무척이나 듣고 싶어 했다. 그러나 재활용된 마취제가 오염되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요구했다.” 베리는 자신의 제품이 쓰이지 못하는 것은 꺼림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환자의 폐 속 깊숙이 들어갔다가 나온 마취 가스를 누가 좋아하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재활용된 마취 가스 내에는 어떤 이물질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 증류 방식을 사용하면 순수한 마취 가스 분자만을 얻어 다른 용기에 넣을 수 있다. 증류 방식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안전하다. 또한 추가 시험도 거쳤다.”
캐나다 기업 블루존은 온타리오 병원 수술실 중 25%에 마취 가스 포집 시스템을 납품했다. 이 회사의 사장 듀산카 필리포빅은 캐나다 전국은 물론 미국에도 제품을 판매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블루존은 병원에서 회수한 가스를 캐니스터에 모아 정화 과정을 거쳐 마취제 생산을 위한 원재료로 쓰고 있다. 필리포빅은 현재 이렇게 만든 가스는 재고로 축적되고 있다고 말한다. 블루존 웹사이트에 따르면, 사용 승인을 받는 즉시 이 가스의 판촉을 개시할 것이라고 한다. 필리포빅에 따르면 목표는 지속 가능하고 안전한 마취 가스 공급 및, 지속 가능한 방식의 오염 감소다. 그녀는 “이런 의약품을 생산하는 공장은 전 세계적으로도 극소수다. 또한 유독성 물질이므로, 이것을 낭비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라고 말한다.
마취제 산업의 규모는 10억 달러에 달한다. 따라서 마취제 포집 및 재활용 산업은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다. 베리는 “우리는 환경을 구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매우 좋은 일을 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재활용된 마취제가 의료용으로 승인이 난다고 해도, 이 시스템의 초기 설치비용은 만만치 않은 장애물이 될 것이다. 베리의 기기 단가는 5만 달러에 달한다. 병원 측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셔먼은 이것이 마취 가스 포집 또는 제거를 통한 기후 변화 저지의 주된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장비에 큰 투자가 따르지 않고, 설치가 의무화되지 않으면 누구도 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베리는 긍정적이다. 그는 지금도 FDA와 접촉 중이다. 일은 천천히 진행 중이지만 그는 앞으로 10년 정도 지나면 마취 가스의 포집이 본격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해낼 것이다. 원래 뭔가 큰 일을 해내려면 한 세대만큼의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 / By Nicole Wets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