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 숙련공이 사라진다]늙어가는 정규직에 막혀...2030 숙련기술 못살리고 일용직 전전

■제조업서 등 돌리는 청춘들
조선·車·철강 등 고령화된 직영·정규직 근로자 많아
숙련도·생산성 높은 하청업체 젊은층 현장서 밀려나
직무난이도 따른 임금 차별화·노동유연화 등 나서야

몇 년간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조선업은 최근 산업 현장에서 숙련 인력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가 세계 5대 제조업 강국으로 올라서는 데 일등공신이었던 조선업은 지난 2015년 근로자 규모가 20만명이 넘었다. 하지만 수년째 이어진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인력이 13만명 수준으로 줄었고 이대로라면 올해 10만명선이 무너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여파로 숙련된 산업 인력들의 기반도 빠르게 붕괴되고 있다. 특히 일이 손에 익어 생산성이 높아졌던 젊은 근로자들의 충격이 크다. 거제 현대차(005380) 직원들의 지난해 말 평균 근속연수는 17.5년. 2013년 16.8년에서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유는 법원이 사내 하청은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한 데 따라 2012년부터 현대차가 이들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생산 현장의 인력 고령화 현상을 야기했다는 분석이다. 일반 공업고를 졸업한 새내기 신입직원들을 채용하지 못하면서 근속연수가 꾸준히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정규직으로 채용된 사내 하청 근로자는 5~10년의 현장 경험을 가진 베테랑으로 사내 하청이라는 이유로 비숙련공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10년 가까이 신규 채용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은 세대 간 기술 전수 측면에서 향후 심각한 문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종은 아예 같은 사업장에서 직영 인력이 숙련 기술을 독점해 하청 근로자들은 접근이 불가능한 구조다. 대기업 정규직으로 형성된 직영 인력은 철강재 생산에 직접 관여하는 메인 설비의 운전과 조작, 모니터링을 담당하고 하청은 이를 지원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설비 분야도 정규직은 전문적이고 난도가 높은 유압장치 수리, 크레인 수리 등의 정비업무를 하는 데 반해 비정규직은 단순 교체 등 단순 작업을 한다. 제강공장의 핵심설비(전로·정련)도 직영이 도맡고 하청은 자재 운송과 수신호 등을 하는 식이다. 이는 2005년 이후 사내 하청 비중이 50%대로 높아지면서 하청이 직영업무를 아예 대체할 수 없도록 진화한 탓이다. 문제는 직영 정규직 근로자들이 늙어간다는 점이다. 국내 최대 철강업체 포스코의 평균 근속연수는 19.6년으로 상위 20대 기업 가운데 1위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현장에서 오래 일한 베테랑들의 노하우는 꼭 필요하다”며 “다만 모두를 대기업 정규직으로 만들지 않는 한 현 구조에서 젊은 직원들을 대거 뽑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 직영과 비정규직 하청으로 이중구조가 공고화된 시장이 산업 현장에서 숙련 인력들의 형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진단한다. 조선업의 경우 배관업무는 최대 10년, 도면을 보고 철판 등을 가용접하는 취부 일은 최대 5년의 숙련기간이 필요하다. 철강 생산공장의 정비업무를 완전히 익히기 위해서는 최대 5년이 걸린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대기업들은 신입을 뽑기보다는 하청을 활용하고 있다. 과보호된 정규직을 정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양금승 서울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산업을 위해서도 제조업 인력 경쟁력은 필수”라며 “연공서열식 호봉제를 직무 난이도에 따라 임금을 달리하는 독일식 직무급제로 가든, 하청의 비중을 더 높이는 미국식으로 가든 노동 유연화 없이는 청년 고용과 숙련 인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노동시장이 경직된 사이 현장의 숙련 인력 기반은 무너지고 있다. 숙련기술장려법에 따라 현장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는 명장 선정 인원은 2000년 34명에서 지난해 11명으로 급락했다. 기계는 2015년 5명에서 2명으로 줄었고 조선은 2013년 이후 단 한 명의 명장도 없었다. 미래의 명장이 겨루는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지난해 우리나라는 중국(15개)의 절반인 8개의 메달에 그치며 선두를 내줬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산업 재편은 피할 수 없지만 산업 인력 이탈을 최소화할 방안은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경우·조민규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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