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차 주한미대사 내정철회…한미 소통채널 공백 길어지나

한반도정책 두고 트럼프 행정부와 견해차 보여

빅터 차 주한미국대사 내정자가 30일(현지시간) 백악관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고 낙마한 것으로 확인됐다.
빅터 차 주한미국대사 내정자가 30일(현지시간) 백악관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고 낙마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미 정부의 요청에 따라 차 내정자에 대한 임명동의(아그레망)를 승인한 바 있다. 그러나 한 달이 넘도록 정식 부임을 위한 후속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워싱턴 안팎에서 ‘이상기류 설’이 제기되던 시기에 나온 이례적인 사태로 평가된다. 평창올림픽 이후 북핵 위기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차 내정자의 낙마로 한미 간 핵심 소통채널이 오랫동안 공백 상태로 있을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차 내정자의 지명검토 철회 소식을 전했다. 백악관도 이러한 보도를 확인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 측 관계자는 “아직 미국 측으로부터 공식적으로 통보받거나 확인한 것은 없다”고 밝혔다.


WP에 따르면 차 내정자가 중도하차한 데에는 대북·무역 등 한반도·한국 이슈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와의 견해차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 내정자가 지난해 12월 트럼프 행정부 일각에서 검토한 북한에 대한 정밀타격인 ‘코피 전략’을 두고 NSC 관계자들에 우려를 표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등 양자 무역 협상을 파기할 수 있다는 ‘협박’을 가한 점에 대해서도 우려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차 내정자의 지인 두 명도 WP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에 대응하는 방식을 놓고 빚어진 이견이 대사직 지명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재고로 이어졌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WP에 따르면 한 관계자는 차 내정자를 두고 몇 달간 진행된 검증 과정에서 ‘흠결’이 발견됐고 이 역시 대사직 부적격 판단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 고위 관계자는 WP에 “적임자를 찾는 대로 빨리 지명하겠다”고 말한 대로 미 행정부는 공식적으로는 후임 물색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외교가 내에서는 대안이 없다는 생각에 공백이 장기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 측은 다음달 9일 개막하는 평창동계올림픽 전 주한미국대사가 부임하기를 희망하며 그동안 미국 정부에 다양한 직·간접적 채널을 통해 조속한 부임을 요청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매파 개입론자’로 알려진 차 내정자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인 지난 2004년 12월 백악관에 들어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보좌관, 북핵 6자 회담의 미국 측 부대표로 활동한 한반도 전문가다. 현재 조지타운대 교수 겸 싱크탱크인 전략 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를 맡고 있다. 그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추천으로 주한대사 후보 물망에 올랐다. 극우파 백악관 참모였던 스티브 배넌 전 전략가가 차 석좌의 지명을 반대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배넌의 낙마로 차 석좌의 내정이 속도를 냈으나 북핵 대처 등을 둘러싼 백악관 강경파와의 이견이 결국 그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차 내정자가 낙마함에 따라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사임한 마크 리퍼트 전 대사가 떠난 뒤 1년간 이어져 온 마크 내퍼 대사 대리 체제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김주환 인턴기자 juj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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