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삼성전자가 50대1로 액면분할을 결정한 31일 주가는 장중 8.71%나 올랐지만 외국인의 매도세에 밀리며 전일보다 0.2% 상승한 249만5,000원을 기록했다. 거래소 직원들이 삼성전자 주가 추이를 확인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권오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은 부회장이었던 지난해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액면분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면서도 “액면분할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발언이었다. 한국거래소는 주식시장의 유동성 확대와 거래 활성화 등을 위해 지난 2015년부터 비싼 주식의 액면분할을 권고해왔다. 삼성전자와 아모레퍼시픽·롯데제과·롯데칠성 등과 간담회를 갖고 당시 최경수 거래소 이사장이 직접 액면분할을 권유하면서 실제로 아모레퍼시픽·롯데제과는 실천에 옮겼지만 삼성전자는 요지부동이었다. 시장에서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대표되는 소액주주운동의 트라우마와 삼성전자 지분을 늘려 경영권을 강화해야 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이해관계에 액면분할을 추진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해외 헤지펀드의 공격,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을 겪으며 전략을 급격하게 수정했다. 주주친화정책으로 방향을 틀며 자사주 매입·소각과 배당 확대 등을 추진하던 삼성전자는 그동안 아껴온 ‘히든카드’를 꺼냈다. 증권사들은 삼성전자가 주주친화정책의 ‘화룡점정’을 찍었다고 평가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삼성전자가 지난해보다 D램 투자를 늘리고 있어 수익성에 의구심이 제기됐지만 이번 결정을 보면 삼성전자가 여전히 주가 부양에 대한 의지가 명확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투자자 저변 확대와 유동성 증대 효과 등으로 주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가보다 중요한 의미는 전체 주식 수가 늘고 가격이 낮아지면서 소액주주들의 접근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현재 삼성전자의 주주 중 52%가 외국인투자가이며 나머지는 대부분 오너 일가와 계열사·연기금이 갖고 있다. 개인투자자 비중은 2%대에 불과하다. 슈퍼개미가 아닌 이상 300만원에 육박하는 주식에 투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주당 가격이 5만원으로 낮아지면 개인투자자들도 큰 부담 없이 투자할 수 있어 ‘국민주’로 발돋움할 가능성도 생긴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늘어도, 배당률이 높아져도 결국 외국이나 오너 일가 등으로만 배분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있다. 보통 액면분할은 10대1로 이뤄지지만 삼성전자의 경우 50대1로 최대한 자잘하게 액면분할을 실시하는 것도 이 같은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한편 삼성전자의 액면분할에 따라 비싼 주가를 자랑하는 다른 ‘황제주’의 액면분할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증시 상승세 속에서 삼성전자가 50분의1로 가격을 낮추기로 하면서 주주들의 요구도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주당 50만원(30일 기준)이 넘는 주식은 우선주를 제외하고 삼성전자를 포함해 총 11개다. 삼성전자 다음으로 가장 비싼 주식은 롯데칠성이다. 주가가 158만2,000원에 이른다. 다음으로 태광산업·LG생활건강·영풍 등이 주당 100만원을 넘는 황제주로 분류된다. 이들 종목은 대부분 유통물량이 적다 보니 거래량이 많지 않다. 태광산업의 경우 지난 20거래일 동안 일평균 거래량이 1,000주에도 못 미친다. 삼성전자의 이번 결정은 다른 황제주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액면분할은 투자자 저변 확대, 유동성 증가 등의 효과를 다소간 가져올 수 있다”며 “다른 초고가주의 액면분할을 유도하는 효과도 기대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유주희·김광수기자 ginge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