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명인 황병기 명인. /서울경제DB
가야금 명인이자 대한민국 현대 국악계의 대부인 황병기 명인이 31일 오전3시15분에 별세했다. 향년 82세. 지난해 12월 뇌졸중 치료를 받기도 했던 황 명인은 합병증으로 폐렴을 앓다가 운명을 달리한 것으로 알려졌다.지난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난 황 명인은 부산중학교 재학시절이던 중학교 3학년 때 친구 홍성화의 권유로 가야금을 만났다. 고등학교 시절 국립국악원에서 김영윤·김윤덕 선생을 사사한 그는 서울대 법대 2학년 재학 중 KBS가 주최한 ‘전국국악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고인은 현대 국악 영역을 넓히고 다양한 장르와의 만남을 시도한 거장으로 꼽힌다.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교수로 제자들을 가르친 그는 2001년 정년퇴임 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아르코 한국창작음악제 추진위원회 추진위원장 등을 역임하는 등 평생을 오직 국악만을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 명인은 지난해에도 신곡 우리 민족의 광명사상(빛을 숭상하는 사상)을 노래한 가곡 ‘광화문’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고인은 지난해 9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 역시 ‘앞으로 할 공연’이라 할 정도로 창작에 대한 열의가 강했다. 그러던 명인은 두 달 전부터 급격히 건강이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신라음악을 되살린 ‘침향무’, 신라고분에서 발견된 페르시아 유리그릇에서 영감을 얻은 ‘비단길’ 등 60년 가까이 창작활동을 이어왔다. 그중에서도 ‘미궁(1975년)’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명동 국립극장에서의 초연 당시 여성 관객이 소리를 지르며 공연장을 뛰쳐나가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을 정도로 전위적인 곡이다. 명인은 일평생 삶을 하나의 노래로 표현한 미궁 연주 당시 가야금을 들었다가 내리기도 하고 바이올린 활을 이용해 가야금을 켜고 장구채, 거문고 술대 등으로 가야금의 몸통을 긁기도 했다. 한때 초·중학생 사이에 ‘세 번 들으면 죽는 노래’라는 루머가 퍼진 적도 있다. 이에 대해 명인은 “죽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허약한 사람들이 지어낸 헛소문”이라며 일축하면서도 “젊은 사람들이 이 노래에 관심을 가져주니 고맙고 재밌다”고 웃어넘기고는 했다.
현대무용가 홍신자, 첼리스트 장한나, 작곡가 윤이상, 미디어아티스트 백남준 등 다양한 장르·세대의 예술가들과의 활발히 교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교 4년 선배인 백남준은 둘도 없는 예술적 동반자였고 윤이상과는 젊은 시절부터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며 남북한 음악 교류 사업에도 함께 힘썼다. 46년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친구로 지낸다는 장한나와의 사연도 유명하다. 명인은 평소 “친구가 별거냐, 기회가 되면 만나서 차 마시고 대화가 통하면 그게 친구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고인은 2004년 호암상, 2006년 대한민국예술원상, 2008년 일맥문화대상, 2010년 후쿠오카아시아문화상을 수상했으며 2003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인 소설가 한말숙씨와 아들 황준묵(한국고등과학원 교수), 원묵(텍사스 A&M대 교수)씨, 딸 황혜경(주부), 수경(동국대 강사)씨, 사위 김용범(금융위 부위원장)씨, 며느리 송민선(LG전자 부장), 고희영(주부)씨 등이 있다. 장례식장은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에 마련됐다. 장지는 용인천주교묘원이며 발인은 오는 2월2일이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