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저축·국민주택채권 등을 재원으로 조성된 자금으로 80조원이 넘는 기금을 운용하면서 주택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수장의 공백이 길어지고 있다. 김선덕 HUG 사장의 임기가 지난 8일 만료된 가운데 당초 HUG는 1월 말께 주주총회를 열고 신임 사장을 선임할 계획이었으나 정부의 후보자 추천이 지연되면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최근 주택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서울과 지방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정부의 주택정책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HUG 사장 선임 절차가 늦어지면서 시장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공공기관 지정 건과 공공기관 사장 선임 관련 안건을 다뤘다. 당초 이날 공운위에서는 국토교통부 산하기관인 HUG와 한국감정원의 사장 후보가 확정될 예정이었지만 HUG 사장 후보는 아예 안건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감정원 사장 후보는 두 명을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HUG와 감정원의 사장 선임은 공운위에서 후보자 두 명을 추천하면 각 기관에서 주총을 열어 결정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날 HUG 사장 추천 안건이 논의되지 않은 것에 대해 “HUG 사장 선임 절차 자체가 평소보다 늦게 시작했다”며 “2월 중순께 예정된 공운위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감안하면 HUG 사장은 빨라도 2월 말이나 3월 초에나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재부 관계자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HUG 사장 선임이 계속해서 늦어지는 것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번 HUG 사장 선임 절차도 평소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데다 과거와 달리 HUG 사장 후보가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실제 HUG는 사장 임기를 한 달 정도 앞둔 지난해 12월 초 공모를 시작했으며 지난해 말 교수들로 구성된 임원추천위원회가 6명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면접을 실시한 후 3명을 추려 공운위에 전달했다. 이에 HUG는 1월 초 이사회를 열고 24일로 주총 일정을 잡았다. 이후 공운위가 연기되면서 주총을 연기하기는 했지만 늦어도 이날은 후보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됐다. HUG 관계자는 “이번 사장 선임 과정은 여러모로 과거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며 “통상적으로 사장 선임 전에 하마평에 오르는 후보들이 여럿 거론되는데 이번처럼 후보자가 안 알려지는 경우는 처음이고 사장 선임 절차도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며 의아해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유력한 후보 중 하나로 확인된 이재광 ESG모네타 대표에 대해서는 HUG 안팎에서 의외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 대표가 지금까지 건설부동산 업계와는 인연이 없는 금융투자 업계 출신이기 때문이다. 실제 현 김 사장과 전임 김선규 사장은 건설부동산 업계 출신이며 역대 HUG 사장은 대체로 국토부 출신이나 건설부동산 업계 출신이 맡아왔다. HUG 내부에서도 이 대표에 대해 잘 모른다는 평이 많았으며 한편으로는 건설부동산 업계를 잘 모르기 때문에 역량이 의심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이처럼 HUG 사장 선임이 늦어지면서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국토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HUG가 ‘나인원한남’과 같은 논란이 되는 사업장의 분양보증 등을 쉽게 결정할 수 없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편 HUG는 지난 2015년 말 기준 79조9,733억원의 주택도시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HUG는 기금을 활용해 임대주택 건설자금대출·대출보증, 도시재생사업 출자 및 대출·대출보증, 분양 및 하자보수보증 등의 업무를 하는 등 주택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