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문·블루문·블러드문 개기월식’이 한꺼번에 나타난 31일 밤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바라본 달이 부분월식에서 개기월식으로 변하고 있다. 5분 간격으로 촬영한 사진 12장이다. /연합뉴스
31일 저녁 달이 지구에 가려 태양 빛을 받지 못하고 어둡게 보이는 ‘개기월식(皆旣月蝕)’이 일어났다. ‘식(蝕)’은 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듯 점차 없어진다는 뜻이다. 이날 개기월식은 슈퍼문(Super Moon·달이 지구와 가까워져 평소보다 14% 크고 30% 밝게 보임), 블루문(Blue Moon·같은 달에 보름달이 두 번 뜸), 블러드문(Blood Moon·월식으로 달이 붉게 보임)이 동시에 나타나는 우주쇼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월식은 ‘태양-지구-달’이 일직선이 돼 달이 지구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일부가 가리면 부분월식, 완전히 가리면 개기월식이 된다. 월식은 지구 지름이 달보다 4배 정도 커 지구의 모든 지역에서 볼 수 있다.
물론 달이 지구 그림자에 들어간다고 해서 달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태양 빛이 지구 대기를 지나면서 산란이 일어나 굴절돼 달에 닿게 되고 이 빛에 의해 달이 검붉게 보인다. 월식 때마다 달의 붉은색이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년)는 월식을 관측하다가 달에 드리운 그림자를 보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슈퍼문·블루문·블러드문 개기월식’이 한꺼번에 나타난 31일 밤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바라본 달이 부분월식을 거쳐 개기월식으로 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월식은 이론적으로는 매달 발생해야 하나 달이 지구를 도는 공전궤도와 지구가 태양을 도는 공전궤도가 5도가량 기울어져 있어 실제 연 1~2회 발생한다. 31일 밤 개기월식은 오후 9시51분24초 시작돼 10시29분54초에 최대 규모가 됐고 11시8분18초까지 지속됐다. 부분월식은 저녁 8시48분6초에 시작돼 개기월식을 거쳐 2월1일 오전 0시11분36초까지 진행됐다. 우리나라에서 개기월식의 전 과정을 본 것은 2011년 12월10일 이후 6년여 만이며 2025년 9월7일에 다시 전 과정을 관측할 수 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개기월식은 2015년 4월4일이지만 이때는 부분월식부터 봤다. 다음 개기월식은 오는 7월28일로 새벽 3시24분12초 부분월식이 시작돼 새벽 5시37분까지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일식은 ‘지구-달-해’가 일직선으로 놓이며 태양이 달에 가리는 것이다. 태양이 일부 모이면 부분일식, 아예 안 보이면 개기일식이다. 태양 주변이 금가락지처럼 남아 있는 금환일식(金環日蝕)도 있는데 지구가 태양과 가장 가깝고 달과는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발생한다. 달의 지름이 태양의 400분의1밖에 안 되는데 일식이 일어나는 것은 지구에서 볼 때 태양이 달보다 400배 멀리 있어 거의 같은 크기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일식은 관측 지역이 한정돼 있고 지구와 달이 빠른 속도로 움직여 대부분 8분 이내에 끝난다. 지난해 8월 아메리카대륙과 유럽 서부, 아프리카 서부 등에서 개기일식이 관측됐는데 미국에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90분간 14개 주를 관통하며 발생한 ‘99년 만의 우주쇼’라며 큰 화제가 됐다.
일식은 태양이 이동한 것처럼 보이는 황도와 달의 공전궤도인 백도가 5도가량 기울어져 있어 매우 드물게 일어난다. 한반도에서 최근 일어난 개기일식은 1887년 8월19일(금환일식은 1948년 5월21일)이었다. 앞으로는 평양·원산 등에서 2035년 9월2일 오전9시40분에 볼 수 있다.
개기일식 과정을 연속적으로 촬영한 모습으로 가운데 태양 중 주변이 밝게 빛나는 부분이 20만도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동아
한편 요즘에는 월식이나 일식이 하나의 우주 이벤트로 받아들여지지만 ‘제왕이 곧 하늘’이던 왕조시대에는 흉조로 여겨졌다. ‘제왕이 통치를 잘못해 일어났으므로 근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09년에 방송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도 황녀인 미실이 월식이나 일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며 권력을 굳히는 장면이 나온다. 해와 달의 운행과 절기를 적어놓은 책력(冊曆)인 ‘대명력’을 보고 천문현상을 예측한 뒤 음모를 꾸민 것이다. 1,400여년 전 당시 숭배의 대상이던 해와 달이 빛을 잃게 되면 충분히 하늘이 내리는 경고로 받아들여졌음 직하다. 성악설로 유명한 순자(BC 298~238년)가 일식과 월식에 대해 “하늘 운행의 일정한 법도일 뿐이니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소수의견에 그쳤다.
조선시대에도 일식이나 월식이 빚어지면 왕은 “하늘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야 한다”며 대신들과 함께 흰옷을 입고 해와 달이 다시 나오기를 기원하는 구식의(救蝕儀)를 치렀다. 실례로 세종대왕은 “1422년 음력 1월1일에 일식이 있을 것”이라는 서운관의 보고를 받고 구식의를 준비했는데 일식이 예측보다 15분 늦게 시작되는 바람에 추위에 떨었고 해당 관리가 곤장을 맞았다는 기록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대 제왕은 하늘의 뜻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천체를 관측하려 했다. 선덕여왕 시절 경주 첨성대(瞻星臺)가 대표적인 예다. ‘과학 르네상스 시대’를 연 세종대왕은 과학자들과 함께 천문현상과 북극고도 관측, 각종 역법이론을 연구해 우리 실정에 맞는 역법인 칠정산(七政算)을 펴냈다. 제왕이 역법을 연구해 달력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하늘의 절기를 알려줘 제때 농사를 짓도록 하는 일은 왕조시대 국가적 사업이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드라마 선덕여왕 포스터로 왼쪽에서 두번째가 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