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록스 로체스터 스퀘어 /홈페이지 캡처
세계 최초로 건식복사기와 레이저프린터를 내놓으며 한때 대표적인 혁신기업으로 자리매김했던 제록스가 설립 115년 만에 회사를 매각한다. 복사·인쇄사업에만 매달리다 급변하는 정보기술(IT)의 파도를 넘지 못한 제록스의 몰락은 혁신 아이콘도 또 다른 혁신을 게을리한다면 씁쓸한 최후를 맞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고모리 시게타카 후지필름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결정이 세 회사 모두에 레버리지 효과를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제록스 매각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세계 최초 건식복사기를 발명하며 먹지를 쓸모없게 만든 제록스는 미국 반독점 당국의 복사기 특허 개방 명령을 계기로 일본 경쟁사들의 거센 추격을 받았다. 여기에 e메일의 등장과 전자문서 대중화로 사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지난해 4·4분기 제록스는 사무용 프린터 판매 급감 등의 이유로 19억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으며 20년 전 150달러를 웃돌던 주가는 최근 30달러선까지 떨어졌다. 계속되는 주가 부진에 행동주의 투자자이자 최대주주인 칼 아이컨은 회사 측에 CEO 사퇴와 매각을 요구해왔다.
115년 역사의 제록스는 사명 자체가 ‘복사하다’라는 뜻일 만큼 상징적인 존재로 평가된다. 1903년 MH쿤(Kuhn)컴퍼니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제록스는 1938년 체스터 칼슨이 개발한 복사기술 특허권을 사들인 뒤 칼슨의 추가 연구를 꾸준히 도왔다. 그 결과 1959년 최초 건식복사 원리를 이용한 복사기를 개발했으며 1977년에는 세계 최초로 상용화 레이저프린터를 출시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1973년 개인용 컴퓨터인 제록스 알토를 선보이며 사업이 다변화되는 듯했지만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시장에서는 복사기 시장에서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제록스가 현실에 안주한 결과 매각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애플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조차 제록스로부터 영감을 얻고 매킨토시를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새 영역 개척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다.
데이비드 요피 하버드대 교수는 “제록스는 기술을 독점하면서 결과적으로 새 시대로의 전환을 실행하지 못한 전형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