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점수가 700점대지만 글로벌 투자은행(IB)을 목표로 하는 국내 최대 증권사에 한 대학생이 입사했다. 남들은 여러개씩 취득한 금융자격증 하나 없이 증권맨이 된 경우도 있다. 이들은 모두 겉으로 드러나는 스펙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은 자신감으로 증권사의 문을 두드렸고, 입사에 성공했다.
평균에 못 미치는 토익 점수로 미래에셋대우 통합 공채 1기로 입사한 서영배 사원은 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대학생들이 필수적으로 꼽는 토익 점수대가 700점대”라며 머쓱해 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스펙이나 어학점수보단 여러 활동을 경험하면서 성장했다”고 자신만의 취업 성공 스토리를 들려줬다.
◇직군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필요= 그가 여러 활동을 한 뒤 깨달은 것은 사람에 대한 이해였다. 서 사원이 지원한 직군은 자산관리(WM) 부문이다. 다양한 성향의 고객을 만나고 이해한 뒤 설득해야 하는 일을 한다. 여기서 당장 오늘의 토익점수는 중요하지 않다. 20여년 간 살아오면서 경험한 사람에 대한 이해가 더 중요하다고 느꼈고, 서 사원은 그런 경험을 최대한 어필했다.
서 사원은 “대학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중고등학생들 대상으로 심리상담 봉사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명의 학생들을 상담하며 상대방을 이해하는 생각의 폭도 넓어졌다고 밝혔다. 학창시절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면서 느낀 점도 면접에서 털어놨다. 서영배 사원은 드라마 촬영 보조, 공장, 호프집, 택배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나고 경험했다.
각 증권사에서 최근 사활을 걸고 있는 WM 부문에서 스펙은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학점이 4점대에 못 미치는 서 사원은 다른 지원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스펙이지만 ‘사람에 대한 고민’이란 키워드를 통해 치열한 취업전쟁에서 승리했다.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일관된 경험 쌓기= 박재현 KB증권 사원도 서영배 사원과 비슷했다. KB증권 WM부문에 지원한 그 역시 흔하디 흔한 금융자격증 없이 국내 대형 증권사에 입성했다. 박 사원 또한 사람에 대한 이해와 수많은 경험을 입사과정 전반을 통해 어필했다. 박 사원은 “미국에 잠깐 거주했던 적이 있는데 홈스테이 가정이 이사를 갔다”며 “한국으로 돌아왔어야 하는 상황인데 다니던 미국 학교 교장과 면담을 해서 다른 홈스테이를 구한 적이 있다”고 힘들었던 경험을 밝혔다.
중학교 시절부터 대학까지 일관되게 금융투자업에 관심을 보였던 점을 회사에 강조한 것이 주효했다. 박 사원은 “중학교 때 주식매매를 처음하며 금융투자에 대한 관심을 설명했다”며 “대학 입학 후 투자동아리에서 4년 내내 리서치 활동, 투자 활동을 했던 것을 서류전형과 면접에서 어필했다”고 전했다. 주요 증권사에서 인턴으로 재직하는 등 이른바 대외활동도 일관되게 금융투자업계 중심으로 했던 자신을 홍보했다. 박 사원은 “전형기간 동안 느낀 건 자격증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라며 “면접과 서류에서 내가 증권업이랑 맞는 사람인가, 어떤 준비를 해왔나 위주로 설득했다”고 전했다.
강지은 NH투자증권 사원도 3년간 금융투자업계에 취업하기 위해 쏟은 일관된 경험을 서류와 면접에서 녹여냈다. 강 사원은 “내 색깔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경험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다”며 “이를 위해 지금까지 금융투자 관련 경험을 리스트업하고 희망직군과 가장 잘 맞는 경험을 선별해 기재했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 금융투자업계 선배들과 지인을 꾸준히 만나며 정말 내가 잘할 수 있는지 확인한 것도 취업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특정 업무에 필요한 최소 스펙은 있어야= WM 부문이 사람에 대한 이해라는 무형의 ‘스펙’이 필요하다면 다른 직군은 구체적으로 직무와 연결되는 증명도 있어야 한다. 조융재 신한금융투자 대체투자부 주임은 “투자은행 입사의 목표를 가지고 CFA, CAIA 자격 공부를 하고 대체투자에 대한 공부도 1년 이상 했다”고 말했다. 다른 스펙은 평균 정도다. 조 주임의 토익 점수는 최근 지원자들의 점수 수준인 900점대에 학점도 3점대다.
조 주임은 대학 재학 시절부터 증권사 IB를 목표로 장기적인 준비를 했기 때문에 면접에서 특히 빛을 봤다. 면접 당시 “IB의 본질이 무엇이냐”라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 주임은 평소 고민하던 자신의 생각을 긴장없이 술술 풀어나갔다고 설명했다.
박종복 NH투자증권 사원도 투자운용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관련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박 사원은 “학창시절부터 운용에 대한 목표가 있었다”며 “서류를 쓸 때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어필하기 위해 직무와 관련된 내용만 부각시켰다”고 말했다. 박 사원은 “대학 시절 관련 자격증인 CFA 1차 합격, 투자자산운용사 자격 획득 등 운용에 관한 사안을 설명했다”고 전했다. 박 사원의 스펙은 관련 자격증 일부와 900점대 후반인 토익 점수 말고는 특별할 게 없었다. 학점 역시 3점대 후반이고 흔한 어학연수 경험도 없었지만 증권사 입사에 성공했다.
/박호현기자 greenligh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