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윤경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지금까지는 국회가 새로운 예산을 편성하거나 정부가 편성한 예산안 중 증액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정부의 동의를 얻어야만 가능했다”며 “하지만 개헌으로 국회가 정부 동의 없이도 새 사업을 편성하고 예산 증액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 대변인은 “다만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총액을 늘리는 것은 여전히 정부의 동의를 구하도록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 대변인은 지난 1일 개헌안 의원총회 후 브리핑에서도 “예산 편성은 정부가 하고 총액 범위는 국회 동의를 거치도록 하며 증액 관련 부분에서 정부 동의를 구하는 것을 폐지하기로 하는 등 예산심사 과정에서 국회의 권한을 강화했다”고 밝힌 바 있다.
헌법 57조에는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예컨대 국회의원이 A사업을 새롭게 국가 예산으로 편성하려 할 때는 정부의 동의를 구해야 했다. 또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B사업의 증액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도 정부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나랏돈을 풀어 지역구에 생색내기를 좋아하는 국회의원의 속성을 제어하고 예산의 무분별한 사용을 막기 위한 ‘브레이크’ 장치였다.
예산안 심사 막판에 의원들이 선심성 지역구 쪽지예산을 넣어도 정부 동의 의무화 장치가 있어 그나마 제어할 법적 근거가 됐지만 민주당 개헌안대로라면 제동장치가 아예 없어진다. 비록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 총액은 정부 동의 의무화를 그대로 둔다고 하나 정부의 예비타당성 등 정교한 검증을 거친 사업 예산은 삭감되고 힘 있는 국회의원의 쪽지예산만 대거 편성될 수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 개헌의 취지는 과도한 대통령·행정부의 권한을 국회 등으로 분산하는 것”이라며 “국회 예산과 관련된 권한을 확대하려는 차원”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예산 전문가는 “헌법에 명시된 정부의 예산 증액, 비목 신설 동의 의무화 제도는 잘 작동하지는 않았어도 쪽지예산을 막는 최후의 보루이자 유일한 장치였다”며 “이마저 없앤다면 국회의원들의 선심성 돈 뿌리기 정책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소위 실세로 불리는 의원들의 쪽지예산 잔치는 국회 예산 시즌마다 무성한 뒷말을 낳으며 논란거리가 됐다. 지난해 말에도 국회 본회의 예산안 통과 과정에서 여야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이 막판에 무더기로 증액됐다. 예결위 민주당 간사인 윤후덕 의원(경기 파주갑)은 파주출판단지 세계문화클러스트 육성 예산 7억원 등을 늘렸고 예결위 자유한국당 간사인 김도읍 의원(부산 북·강서을)은 정부 안에 없던 부산 진해경제자유구역 북측 진입도로 예산 24억원과 부산 북부서 민원동 증축사업비 3억3,900만원을 확보했다. 또 예산안 협상을 주도했던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경기 성남 수정구)은 수정경찰서 고등파출소 신축 예산 30억9,500만원을 편성하는 데 성공했고 김광림 한국당 정책위의장(경북 안동)도 안동대 도시가스 인입 배관 설치 예산으로 15억원, 안동·순천 국립민속박물관 건립 타당성 연구 예산 3억원, 안동 중평 삼거리지구 위험도로 개선사업비 1억원을 따냈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