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데뷔 50주년 투어 콘서트]'Hello~'...영원한 오빠, 화려환 귀환

5월12일 서울공연 시작으로
대구·광주·의정부·제주 순회
트로트부터 팝발라드·록까지
반세기 불멸의 음악인생 조명

‘영원한 오빠, 가왕, 국민가수, 원조 한류 스타….’

조용필을 설명하는 말들은 이처럼 셀 수 없이 많다. 또 수많은 가수들이 반짝 떠올랐다 잊혔지만 조용필만은 불멸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반세기 동안 대중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로 자리매김한 그가 올해 데뷔 50주년을 맞아 기념 투어 콘서트로 팬들과 만난다.

‘조용필 50주년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원회)’에 따르면 조용필은 오는 5월12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을 시작으로 상반기 대구, 광주, 의정부, 제주도 투어 콘서트를 연다. 추진위원회는 콘서트를 전후로 조용필의 음악 인생을 조명하고 데뷔 50주년을 축하하는 다양한 콘텐츠와 행사를 선보일 예정이다. 추진위원회는 조용필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로 학계·공연·미디어·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됐으며 올 한해 50주년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사업을 전개한다. 추진위원회 측은 “조용필 씨는 시대를 관통하고 세대를 통합한 유일무이한 음악인이자 우리 시대의 자랑으로 그의 음악 인생을 조명하는 것은 반세기 가요사와 시대상을 돌아보는 의미가 있다”며 “조용필 씨가 평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어서 각 분야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1968년 록그룹 애트킨즈로 데뷔한 조용필은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뒤 1980년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등이 수록된 1집으로 국내 첫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슈퍼스타’ 탄생의 서막을 알렸다. 또 ‘엑소’와 ‘방탄소년단’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던 그는 1980년부터 이른바 ‘오빠 부대’를 거느린 ‘원조 아이돌’이기도 했다. 그가 등장하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그리고 그가 노래의 첫 소절을 부르는 순간 “꺅”하는 비명이 쏟아지는 현상을 낳기도 했다. ‘왕년의 스타’에 머무르지 않고 그는 지난 2013년에는 19집 ‘헬로(Hello)’를 발표하며 식지 않은 음악에 대한 열정과 인기를 증명해냈다.

조용필은 또 시대와의 교감에도 유연했다. 신군부에 저항하는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암울했던 시기 한을 토해내듯 부른 ‘창밖의 여자’로 국민을 위로했고 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는 ‘서울 서울 서울’로 국민의 자긍심을 높였으며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우리 우네”라는 가사를 담은 ‘서울 1987년’으로는 시대를 노래했다.

조용필은 음악을 향한 지독한 탐구정신과 치밀한 구현으로 후배 음악가들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한몸에 받는 아티스트다. 정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그는 솔로 활동 전 애트킨즈, 김트리오, 조용필과 그림자 등 여러 밴드를 거친 록 뮤지션답게 밴드 ‘위대한 탄생’을 결성해 록에 발을 딛고서 외연을 확장했다. 무엇보다 그는 팝 발라드(그 겨울의 찻집), 포크(친구여), 디스코(단발머리), 펑크(못찾겠다 꾀꼬리), 트로트(돌아와요 부산항에, 미워미워미워, 허공), 민요(간양록, 한오백년, 강원도 아리랑), 가곡(선구자) 등 대중음악의 모든 장르를 선보인 아티스트로 우리 가요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인물이다. 이뿐 아니라 기존의 음악 문법을 깨고 ‘킬리만자로의 표범’에 긴 내레이션을 삽입하거나 19분56초 길이의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을 부르는 등 파격적인 음악 실험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또 1980년대 팝이 주를 이루던 시절 다량의 히트곡을 내며 주류 음악계 선봉에서 서서 가요의 위상을 높였고 그 시절 해외시장에 눈을 떠 일본 NHK ‘홍백가합전’에 4회 연속 출연하며 한류의 물꼬를 텄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제공=조용필 50주년 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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