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부권 최대상권인 건대입구역 모습. 저녁시간인데도 거리에 행인들이 많지 않다. /박해욱기자
서울 남산 인근에서 간장게장집을 운영하는 이민호(가명) 사장은 올 겨울이 유난히 혹독하다. 얼마 전 한파가 극심했던 이틀 간 가게매출은 일평균 대비 반토막 수준으로 급감했다. 장사를 시작한 지 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1월에는 ‘13월의 비용’인 부가세를 납부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인건비 부담이 커졌다. 구정연휴가 낀 이번 달을 생각하면 마음만 더 급하다. 이 사장은 두 자녀의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을 예정이다.
자영업자들이 시련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역대급 보릿고개를 맞았다는 앓는 소리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날씨, 영업일수, 비용부담 등 장사를 둘러싼 여러 여건 중 우호적인 부분은 ‘일도 없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다.
연초부터 최저임금 인상이 시행되면서 자영업자들이 힘들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지만 최저임금은 여러 악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표면적으로는 비용상승에 따른 경영압박이라면 이면에는 또 다른 고충이 숨겨져 있다. 이 사장은 “장사가 잘되면 얼마든지 월급을 올려줄 수 있지만 지금처럼 장사가 죽을 쑬 때 하필이면 강제적으로 인건비 상승이 이뤄졌다”며 “사장 마음이 불안하다 보니 직원들과의 관계가 더 어색해졌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에게 1월은 한해 중 가장 피하고 싶은 달이다. 부가가치세 납부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개인·법인사업자는 1월25일까지 부가세를 확정신고하고 납부해야 한다. 다달이 부가세 부분만큼 따로 적립해놨다가 기간에 맞춰 한꺼번에 내면 부담이 덜하겠지만 일매출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자영업 시장에서 긴 호흡으로 이를 준비하는 자영업자들은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설상가상으로 예상치 못한 한파는 소비심리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여의도 증권사에서 근무하는 윤선일씨는 “기온이 섭씨 15도 이하로 내려간 날 예정된 회식을 하긴 했는데 길거리나 식당에 사람이 드물었다”며 “직원들은 앞으로 아주 추운 날은 회식하지 말자고 하더라”고 전했다.
자영업자들이 직면한 악조건은 또 있다. 2월은 일수가 가장 짧은 달인데 그마저 구정연휴까지 끼어 있어서 총영업일수는 18일(토·일 제외)에 불과하다. 임대비, 직원월급 등 고정비용이 똑같이 지출되는 상황에서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 수익성에 비상등이 켜졌다. 게다가 학부모인 자영업자들은 이달 중으로 대학교 등록금을 내야 한다. 정부정책을 비롯해 계절성 요인, 가계운영비용 등 어느 하나 우호적인 여건 없이 ‘5중고’에 둘러싸인 형국인 셈이다.
광화문에서 우동집을 하는 조광석(가명) 사장은 “남자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데 등록금, 용돈 부담 탓에 첫째를 올해 군대를 보낼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지금 같은 보릿고개가 계속되는 한 언제까지 장사를 계속해야 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박해욱기자 spook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