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문성진 문화레저부장 hnsj@sedaily.com
[서경이 만난 사람] 양현미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 인터뷰./송은석기자
양 원장은 우선 전 세대를 위한 생애주기에 따른 맞춤형 문화예술교육의 확대를 강조했다. 특히 50세 이상 65세 미만의 ‘노인 되기 전’ 세대를 주목했다.“이들 중장년층은 교육 수준이 높으면서 민주화 사회에서 살아온 세대인데 50대 이후 문화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러나 이 세대를 위한 문화예술교육 제공의 사회적 서비스나 문화시설, 문화단체에서의 공급 시스템이 아직은 원활하지 않죠.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는 생활문화센터 이용자를 조사했더니 대부분이 50~60대였습니다. 이들 중장년층은 커리큘럼을 따르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는 세대인 만큼 ‘생애전환 문화예술학교’를 통해 이들의 문화예술교육 수요를 파악하고 적절한 지원 방식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예술교육이 처음이고 잘 못하는 사람, 이른바 예술 초보자가 문턱을 넘게 하는 역할이 있다면 어느 정도 역량을 쌓은 이들이 동아리 활동까지 할 수 있을 정도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영국의 크리에이티브 에이징(Creative Ageing)과 같은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치매 예방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도 연내 도입하기로 했다.
동시에 양 원장은 도시재생과 예술교육을 접목해 지방 소도시의 유휴공간을 문화예술교육 전용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에 주목했다. 버려진 초등학교 건물을 예술교육센터로 개조해 아동·청소년과 가족에 특화된 예술활동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핀란드 헬싱키의 ‘아난탈로(Annantalo)’를 본떴다. 그는 “지방에서는 학교와 폐공장 등 유휴공간이 늘고 도시재생 필요성이 거듭 제기된다”며 “관련 기자재를 구비해두고 예술가들이 상주하며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놀고 가르치기를 병행할 수 있다면 학생부터 어르신들까지 다양하게 이용하는 예술교육 전문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원장은 서울시 문화기획관으로 있을 때 이미 양천구 신월동 김포가압장 등 유휴공간을 예술교육 전용공간으로 확대하는 일을 추진한 바 있다. 2003년 폐쇄된 후 10년 넘게 방치됐던 이곳은 서울문화재단 주도로 서서울예술교육센터로 리모델링돼 2016년에 문을 열었다. 지금은 시각예술가 등이 상주하면서 다양한 예술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유휴공간 활용 문화예술교육센터 지원사업’은 올해 공모를 통해 우선 4곳 정도 지방자치단체를 선정, 추진될 예정이다. 이 사업은 문화예술교육의 서울 지역 과다집중을 극복하는 데도 기여해 지방분권과 도시재생의 일거양득(一擧兩得)을 이뤄낼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예술교육의 학교 쪽 쏠림을 지적했지만 그렇다고 이 부분을 축소하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예술가를 학교로 보내 교육을 진행하게 한 프랑스식 예술강사 파견의 성공 사례가 우리나라에서는 ‘일자리 사업’으로 적용된 점, 그럼에도 처우 개선 없이 ‘일자리 수’에 집착한 운영 방식의 한계를 꼬집었다. 그는 “교과과정 개편으로 학교에서 음악·미술 등 예술교육을 ‘선택’하게 한 것이 위기감으로 작용했다”며 “초등학교 음악 교과의 40%를 차지하는 국악 수업을 위해 전문 예술강사가 파견되고 국어 교과 중에서 희곡 부분은 연극 전공자가, 체육 수업 중 무용은 무용 전공자가 해주는 수업이면 질적으로 가치가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뮤지컬, 영화 제작, 애니메이션 등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는 통합교육과 새로운 융합교육 수요에 대응해 강사진도 새롭게 꾸려야 한다”며 “한국예술종합학교와 MOU를 체결한 서울시교육청, 2개 이상 장르의 선생님에 학생 심리상담사까지 3명 이상 ‘팀티칭(team teaching)’ 방식의 융합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학교에 파견하는 서울문화재단 등의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강사 인원을 일자리 수로 세지 말고 교육프로그램 단위로 융통성 있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다.
예술교육의 변화는 한류 문화 산업이 K팝을 위시한 영화·게임 등 대중문화 분야에서만 반짝 두각을 보인다는 한계점을 극복할 방법으로도 꼽힌다. 과학기술 분야로 치자면 기초과학에 해당하는 순수예술 분야의 취약을 교육을 통해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양 원장은 유치원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피아노를 배웠으나 서툰 음색을 내는 자신과 달리 함께 배운 사촌 동생의 음악은 무척 아름다웠고 결국 피아노 전공자가 된 경험담을 소개했다. “내가 연주해보고서야 비로소 그 사촌이 얼마나 잘 치는지 깨달았다”는 그는 “실제 창작을 경험해보면 진짜 고급예술이 얼마나 공들여서 만들어진 것인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순수예술 분야는 대중문화에 비해 수요자가 적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대중문화는 기본적으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지만 순수예술은 대중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예술가 자신이 삶과 사회에 대해서 얻은 깨달음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깨달음과 문제의식을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끼는 것은 아니니까요. 즉 순수예술 분야에서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역량이 생겨야 하는데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그런 이해능력이 생길 때 예술의 일상화, 대중화를 비롯해 수요 증가가 일어납니다. 조급해할 일은 아니죠.”
정부가 실시하는 예술인 실태조사의 모집단이 약 15만명, 즉 국내 예술창작자가 15만명이라는 뜻인데 이 중 예술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소수이고 대부분 아르바이트 등 다른 일감으로 벌이를 한다. 예술가가 예술활동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예술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가 마련되기 위해서는 안목을 가진 수요자가 있어야 하고 그 해결책은 예술교육뿐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첫걸음은 국민들이 집 주변이나 동네 가까이에서 일상적으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게 접근성을 높이는 데 있다. 경복궁 서편 ‘서촌’에 사는 양 원장은 “동네 산책 중에 들른 공방에서 한동안 목공 수업을 들었고 요즘은 가죽공방에 다니면서 명함지갑도 만들었다”면서 “문화생활이 가까운 동네나 일상적 생활권 단위 안에서 원활히 공급될 수 있게 광역이나 기초단체, 정부가 머리를 잘 맞대야 한다”며 ‘생활문화 시대’를 제안했다.
예술은 서열도 정답도 없다. 예술은 창의성의 결과일 뿐 아니라 공감을 이끄는 보다 깊은 커뮤니케이션의 한 표현이다. “세월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사람의 감정 영역의 탄탄한 지반이 잘 드러난 작품은 고전이 되고 그런 깊이가 없으면 그저 한 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집니다. 인간성의 감성적 토대가 좋은 작품에 담기고 이게 국민들에게 흡수되면 남을 배려하고 자기 삶을 성찰해 더 나은 삶을 만들어줍니다. 기능보다는 창의를, 배타가 아닌 공감을, 위로에서 나아가 삶의 통찰을 길러주는 문화예술교육을 지향하는 이유입니다.”
/정리=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