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의료 시행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는 ‘연명의료결정법’이 4일 본격 시행된 가운데 당분간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연명의료 중단에 필수적인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된 병원이 1%에 머물러 사실상 할 수 없는데다 의료계에서는 처벌규정에 대한 우려를 내놓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날부터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의 요건을 충족하는 사람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남길 수 있다.
연명의료는 치료 효과 없이 환자의 생명만을 연장하기 위해 시도하는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혈액투석·항암제투여 등 4가지 의료행위를 칭한다.
그러나 연명의료 중단 결정과 이행 업무를 위해 필요한 ‘의료기관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를 설치한 병원은 전체의 1.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을 원하더라도 현 상황에서는 이행할 수 있는 병원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했다더라도 실제 연명의료를 받지 않으려면 윤리위가 설치된 병원에서 사망이 임박했다는 판단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도자 의원(국민의당)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3일 기준 전국 3천324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중 59곳에만 윤리위가 설치됐다.
상급종합병원은 42개 중 23곳(54.8%), 종합병원은 301개 중 30곳(10%), 병원급은 2천981개 중 6곳(0.2%)이 윤리위를 법 시행 전에 설치했다.
병원급 중에서는 요양병원은 1천519곳 중 4곳(0.3%), 요양병원이 아닌 병원은 1천462곳 중 2곳(0.1%)으로 0%대에 머물렀다.
의원급 중에서는 1곳이 윤리위를 설치했다.
최 의원은 “법 시행 초기라고 해도 윤리위 설치가 너무 저조하다”며 “윤리위가 없는 병원에서 임종기를 맞게 돼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을 원할 경우 윤리위를 구성한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점 등을 감안해 설치 병원을 보다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아직 시행 초기인 만큼 인프라 구축에 힘을 쏟겠다는 방침이다.
박미라 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지난달 29일부터 윤리위 등록을 받았으나 아직 초기여서 시간이 좀 더 걸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인프라 확충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행기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가운데 현장에서도 아직 변화를 느끼기엔 미미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미 시범사업이 시행된 데다 법 시행 첫날이라고 해서 새로운 문의가 체감할 만큼 많이 늘어나지는 않다는 점에서다. 이날부터 연명의료계획서 등을 작성·등록하는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의 연명의료정보시스템 활용도 쉽지 않다고 의료진은 토로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연명의료정보시스템이 이날 0시에 열렸는데 등록하는 방법 등이 완벽히 공유되지 않아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공인인증서 등의 절차가 복잡해 우선 서면으로 등록한 뒤 천천히 살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의료진 대상 처벌규정이 과도하다는 볼멘소리도 쏟아져 나온다.
현재 연명의료결정법에서는 환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문서를 허위 작성한 의사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초 복지부는 연명의료결정법과 관련한 의료진 처벌규정을 1년 유예하겠다고 했으나, 아직 해당 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김주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연명의료 중단이 신중하게 시행돼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현재는 의료진에 대한 처벌규정이 과도하다”며 “사전에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확인하지 못한 채 임종기에 처한 환자에 대한 의료진의 결정도 존중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연명의료결정법의 빠른 정착을 위해서라도 처벌규정 유예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연명의료결정법 준비위원회 위원장(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은 “처벌규정 유예가 있어야만 의료현장에 적용하기가 더 수월해질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절차가 완벽해질 뿐 아니라 현장에서 보완해야 할 점 등이 드러날 수 잇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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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