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삼성은 안도감 속에 극도로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1심과는 결 자체가 완연히 다른 판결이 나온 만큼 자칫 역풍이 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항소심 판결로 특유의 ‘스피드 경영’이 부활하고 사업 재편 등 큰 그림도 구체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감지된다. 삼성의 한 고위관계자는 “오너 결단이나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대규모 투자나 사업 재편, 계열사 인사 등에서 의사 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임원은 “(석방 후) 곧바로 이건희 회장 병문안을 간 이 부회장이 추후 임직원 격려 차원에서 사업장도 돌며 경영 구상을 가다듬지 않겠느냐”며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 이 부회장 석방에 대한 비판 여론이 엄연히 존재하는 만큼 주위를 두루 살피는 행보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도약 전기 마련한 삼성…밑동부터 변화의 바람 불까=재계와 법조계에서는 그간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에 무게를 두는 시각이 우세했다. 항소심에서도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 나오지 않은데다 특별검사도 공소장을 4번이나 변경했기 때문이다. 특히 여기에는 집행유예가 사법적 유죄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 ‘실리(경영인으로서 이 부회장 활동 재개)’도 일반인의 법감정에도 부합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결과론적으로 이런 관측은 적중했다.
최악의 경우 나락으로 떨어질 뻔했던 삼성으로서는 기사회생의 모멘텀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지난해 말 오너 부재 속에 인사 및 조직 개편을 통해 새 바람을 불어넣은 데 이어 이 부회장 복귀로 중심을 잡고 글로벌 무대에서 자웅을 겨뤄볼 수 있는 전기를 잡게 됐다. 전자업계의 한 고위 인사는 “주요 경영 현안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와 빠른 의사 결정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이점만으로도 삼성으로서는 천군만마를 얻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 이후가 물음표였던 삼성이 이제 본격적으로 미래 먹거리를 모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초대형 인수합병(M&A)도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은 “마무리 단계였던 인공지능(AI) 기업 M&A가 무산된 적이 있다”며 총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을 피력하기도 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M&A를 통해 필요 기술을 수혈하는 실리콘밸리 식 경영에 가까웠다”며 “그간 스마트싱스(스마트홈 연결), 루프페이(삼성페이 결제 방식), 하만 인수 사례에서 보듯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화가 더 가속화될 것”이라고 짚었다. 증권가의 한 임원은 “전장사업에서 수직계열화를 완성하기 위해 추가적인 자동차 부품 업체 인수 등을 모색할 수도 있다”고 봤다.
◇무너진 해외 네트워크 재건 나설 듯=이 부회장은 지난해 2월 구속되며 이탈했던 글로벌 정보통신(IT) 거두와의 교류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그간 이런 ‘고공 네트워크’를 통해 사업 재편의 아이디어를 얻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 부회장은 지난 2016년 12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글로벌 IT 거물들을 초청했던 테크 서밋에 비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초청됐다. 앞서 2011년 췌장암으로 사망했던 고 스티브 잡스 추도식에도 참석했다. 구속 전인 2013년에는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 등이 그를 만나기 위해 서초 사옥에 오기도 했다. 현재 이 부회장은 중국의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이라는 보아오포럼 상임이사 연임을 포기하고 엑소르 사외이사도 이미 그만둔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1년 중 3분의 1가량을 해외에 머물며 IT 거물들과 소통해왔다”면서 “특히 통상분쟁 등 글로벌 현안이 많은 시기에 글로벌 리더들과의 네트워크는 삼성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훈·한재영기자 s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