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2심서 집유 석방]0차 독대·묵시적 청탁 등 무너진 특검 논리 '무리한 기업 흔들기'

촛불여론 의식, 명확한 증거 없이 새 혐의 찾기에만 급급
재판부, 李 피해자 규정 '전형적 정경유착' 주장도 안먹혀

6일 오후2시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서 박영수특별검사가 특검보들과 함께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송은석기자
이른바 ‘0차 독대’와 묵시적 청탁 등 박영수 특별검사가 법정에서 내세운 핵심 논리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차례로 무너지면서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이 부회장이 지난해 2월17일 구속되면서 구치소 생활을 시작한 지 353일 만이다.

특검은 5일 이 부회장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1심에 이어 재판부가 특검 측의 손을 들어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그동안 특검이 강조했던 핵심 논리를 대부분 인정하지 않으면서 특검은 이번 재판에서 사실상 참패했다. 게다가 이 부회장이 실형을 면하면서 특검이 ‘무리한 수사로 기업 흔들기에 나섰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촛불여론 의식, 명확한 증거 없이 새 혐의 찾기에만 급급

잦은 공소장 변경 등 참패 자초…끼워맞추기 수사 비판도



법조계에서는 특검의 참패 원인으로 ‘촛불민심’ 등 여론을 의식한 무리한 수사를 꼽는다. 통상 1심 재판이 끝나면 검찰은 기존 혐의 입증에 주력한다. 2심에서 보강조사를 통해 ‘막판 뒤집기’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특검의 행보는 기존 검찰과 차이가 컸다.


특검은 1심 판결 이후 이 부회장에 대한 ‘혐의 확장’에 주력하며 추가적 의혹을 내세우기에 급급했다. 대표적인 것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0차 독대’다. 특검은 “시기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추가 독대가 있었다”는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의 진술을 근거로 기존에 확인된 세 차례 독대 외에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한 번 더 만났고 그 자리에서 부정청탁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또 삼성의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에 뇌물죄를 적용하고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에 ‘제3자 뇌물죄’를 추가하는 등 추가 혐의 발굴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특검은 재판에서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호언장담했으나 재판부는 ‘0차 독대’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만났고 청탁이 이뤄졌다는 특검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사건을 ‘전형적인 정경유착’이라고 한 특검의 주장도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과 같은 요구형 뇌물 사건에서 공무원의 요구가 권력을 배경으로 한 강요나 직권남용을 동반할 때는 뇌물공여자보다 뇌물을 요구한 공무원이 더 비난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결국 재판부는 특검과 달리 이 부회장을 정경유착의 당사자가 아닌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강요에 의한 피해자로 규정했다.

재판부가 이날 인정한 뇌물은 정씨에 대한 승마 지원뿐이었다. 특검이 승부수로 내세운 공소장 변경이 오히려 재판 결과에는 독이 된 셈이다. 특검이 새로운 혐의를 내세우면서 여론전에 집중한 나머지 가장 기본이 되는 증거 확보 등 법리 강화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이 법조계 안팎에서 나오는 이유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1심에서 제기한 묵시적 청탁이라는 부분은 여타 재판에서 찾아보기 힘든 대목이어서 특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는 데 주력해야 했다”며 “하지만 1심 판결에 대한 추가 입증을 하기보다는 새로운 혐의를 찾는 데 급급하면서 패배를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뇌물 수수 과정에 연루된 대향범(對向犯·필요적 공범)인 박 전 대통령이나 최씨에 대한 직접 진술이 없는 상황에서 기존 혐의를 입증할 준비가 절실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핵심 증인 진술 확보 등에 쓰여야 할 시간을 공소장 변경에 허비하면서 항소심 공판에서 판결이 뒤집히는 빌미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네 차례의 공소장 변경은 특검이 스스로 ‘부실 수사’를 인정하는 게 아니냐는 비아냥마저 나올 정도로 이례적인 사례”라며 “일명 ‘끼워맞추기’ 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된 것도 특검이 기존 혐의 입증보다는 추가 혐의 확대에 몰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현덕기자 always@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