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휴전벽’ 작품 훼손 논란

이제석 작가 “조직위, 사전협의도 없이 작품에 스프레이 칠”
조직위 담당자 “강풍 속 행사 차질 피하려다 생긴 일, 창작자 입장 살피지 못한 것 사과”

장웅 북한 IOC 위원이 5일 평창선수촌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휴전벽 제막 행사에서 벽에 사인을 한 뒤 발길을 옮기고 있다. 휴전벽에 스텐실 기법으로 표현한 색색의 문양이 눈에 띈다. /평창=권욱기자
평화올림픽을 약속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평창올림픽 휴전벽’이 작품 훼손 논란에 휩싸였다.

5일 평창선수촌에서는 휴전벽 제막·서명 행사가 열렸다. 휴전벽은 유엔이 지난해 11월 채택한 평창올림픽 휴전결의를 지지하고 이번 대회를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도모하는 평화올림픽으로 치르겠다는 다짐을 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 휴전벽은 대회 기간 인류가 전쟁을 멈추고 대화와 화해를 통해 평화를 추구하는 올림픽 휴전 정신을 구체화하고자 2006토리노올림픽 때부터 선수촌에 설치됐다. 이날 행사에는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희범 대회 조직위원장, 장웅 북한 IOC 위원 등이 참석했다.

‘평화의 다리 만들기(Building Bridges)’로 명명된 평창올림픽 휴전벽은 높이 3m, 너비 6.5m의 수직 콘크리트벽이 수평으로 구부러져 다리가 되는 형상을 하고 있다. 휴전벽은 대회 기간 선수들의 서명으로 장식되고 대회 종료 후에는 평창 올림픽플라자와 강릉 올림픽파크에 전시돼 이번 대회 유산으로 남게 된다.


행사 후 휴전벽을 제작한 유명 작가인 이제석씨는 언론사에 e메일을 보내 “작가와 단 한 마디의 상의도 없이 대회 조직위 측에서 마음대로 작품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환칠을 해버렸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이날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그저 황당할 따름”이라며 “작품 활동을 10년 넘게 해왔지만 국내에서도 외국에서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내용은 이렇다. 이씨는 아무런 장식이 되지 않은 벽을 일단 공개한 뒤 참석자들이 원하는 메시지를 적어넣도록 조직위와 협의했다. 그러나 막이 걷힌 벽에는 비둘기 모양 등 평화를 상징하는 사물이나 표식이 색색의 스프레이 페인트로 표현돼있었다. “창작물 위에 작가와 협의 없이 조직위가 마음대로 스프레이 칠을 해 본래의 뜻이 전달되지 않았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조직위 담당자는 통화에서 “스텐실 기법으로 그래피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협의 사항이었다. 다만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원안을 공개한 뒤에 행사 참석자들이 스프레이를 뿌리도록 협의했는데 이 순서를 어긴 것은 맞다”면서 “추운 지역에서 진행하는 야외 행사라 강풍에 대비하다 보니 부득이하게 순서를 어겼다. 바람이 많이 부는 상황에서 스프레이를 사용하는 것은 행사 진행은 물론이고 선수 등 참석자들의 건강이나 안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무팀의 해석을 받기도 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이 담당자는 “스프레이 칠 위에 참석자들이 서명을 하는 순서로 진행하기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전날 스프레이 작업을 미리 해놓은 뒤 막을 열어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그렇게 진행했는데 결과적으로 창작자에게 고통을 안긴 셈”이라며 “원활한 행사 진행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인데 창작자 입장을 살피지 못한 데 대한 무지를 전화로 사과했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꼼꼼히 살피겠다”고 말했다.

/평창=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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