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방송되는 KBS1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시간도, 풍경도, 마음도 천천히 녹다 - 백두대간 산중밥상’ 편이 전파를 탄다.
눈과 얼음의 축제 2018 동계 올림픽의 주 무대 평창. 눈 내리면 섬 아닌 섬이 되는 대한민국 대표 겨울왕국 백두대간 산골마을을 만나다. 오지의 추위와 눈이 만들어낸 진한 겨울의 맛을 찾아가본다
▲ 백두대간 오지의 겨울 사냥 문화 - 강릉 대기리 장남성 부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을 중 한 곳인 강릉 대기리. 대기리는 백두대간 산간에 위치해 여전히 눈이 오면 길이 얼어 마을로 진입이 힘든 곳이다. 겨울이면 엄청난 눈으로 고립되기 일쑤였던 이곳은 과거엔 동네 사람들이 모여 나무 썰매를 신고 사냥에 나섰다. 마을에서도 외따로 사는 장남성씨도 옛날에는 마을에서 소문난 겨울 사냥꾼이었다. 물이 묻어도 휘어지지 않는 물푸레나무로 만든 썰매와 돼지를 잡을 긴 창만 있으면 겨울이 든든했다는 남성씨. 자신보다 5배는 큰 돼지를 잡아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마음은 따뜻했단다. 지금은 비록 사냥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겨울이 오면 그 시절에 즐겨먹었던 도토리 음식은 꼭 해 먹는다고 한다.
도토리는 오래 둬도 썩지 않아 도토리 한 가마는 쌀 두 가마하고도 바꾸지 않았다는데. 도토리를 온종일 물에 우려내 떫은맛을 뺀 뒤 팥하고 함께 삶은 이 꿀밤은 완성되기까지 손도 많이 가고 시각도 오래 걸리지만 배고팠던 그 시절, 기나긴 겨울밤을 나기 위한 유용한 밤참이었다. 그리고 가을에 수확해 보관해둔 메밀로 이 꿀밤과 강원도 갓김치를 넣고 만든 반대기는 추운 날씨에도 쉽게 굳지 않아 눈 사냥을 나갈 때 꼭 준비해 갔던 필수 음식이다. 사냥과 겨울철 이 음식들이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추억이지만 춥고 배고팠던 과거에는 생존을 위한 사투였다고 말하는 장남성씨 부부! 겨울이면 많은 눈 때문에 고립이 돼 탄생하게 된 백두대간의 산간마을 대기리 장남성씨 부부의 밥상을 찾아가 본다.
▲ 산 속 깊은 마을, 하얀 눈꽃이 가져다 준 선물 - 봉화 승부마을 밥상
깊은 산속, 차로는 진입하기도 힘든 산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 자리 잡고 있는 봉화 승부마을. 승부마을 사람들에게 눈은 더 이상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외지 사람들과의 연결을 의미한다. 겨울이 되면 마을 기차역인 승부역에 정차하는 눈꽃열차 때문이란다. 원래 석탄을 실어 나르던 열차였지만 지금은 관광열차로 재탄생되어 마을 사람들의 삶을 바꿨다. 그래서 눈꽃열차가 들어오는 날이면 새벽부터 마을은 어수선하다. 손님들은 오는데 마땅한 식당이 하나 없어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열차가 들어오는 날에만 음식을 만들어 판매를 해 준비할 것이 많단다.
춘자씨는 그중 두부를 담당하고 있다. 이제는 움직이기도 힘든 나이이지만 두부만큼은 손두부로 해야 두부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다며 새벽부터 직접 두부를 만드는 춘자씨. 오늘은 그런 춘자씨가 장사를 준비하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추억의 음식을 준비한다는데. 두부를 하고 남은 비지와 감자를 넣은 비지밥부터 겨울이면 질리게 먹었다던 장떡무침까지~ 당시에는 물려서 먹기 싫었지만, 지금은 그때가 그리울 때면 먹는다는 추억의 맛이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겨울 산에 올라가서 사냥해왔던 토끼육포도 쫄깃하고 촉촉한 맛이 별미란다. 이제는 그 어느 계절보다 겨울이면 마을에 활기가 넘친다는 봉화 승부마을. 승부마을 사람들의 눈꽃이 차린 밥상을 따라간다.
▲ 동계올림픽 개최지 평창, 설국 선자령을 따라서 - 평창 트레킹
높은 산과 겨울이면 내리는 많은 눈으로 눈의 왕국이라고 불리는 2018 동계올림픽의 개최지 평창. 설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평창은 트레킹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매년 겨울이면 백두대간의 진정한 풍광을 보기 위해 친구들과 산에 오른다는 홍영기씨. 그중에서도 선자령은 산행하기 쉬우면서 가장 아름다운 눈꽃을 볼 수 있어 자주 오른다는데. 친구들과 오르는 겨울 선자령은 언제나 그들을 동심으로 돌아가게 한단다.
즐거운 마음으로 선자령에서 내려온 그들에게 또 한 번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선자령 아래 횡계리에 사는 홍영기씨의 아내 손정순씨가 준비한 특별한 밥상이 그것이다. 손질한 한우 잡뼈를 푹 고아 5년 된 약고추장과 겨우내 말린 우거지를 넣어 끓인 한우잡뼈우거지국은 추운 겨울 몸을 따뜻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닭을 손질해 뼈와 살을 함께 갈아 두부와 함께 부친 닭반대기도 평창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향토 음식이다. 고소하고 담백한 맛에 정순씨가 특히 좋아하는 음식이라는데~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살다 보니 가끔 이렇게 오는 남편의 친구들이 반갑다고 말하는 정순씨. 겨울이면 설국이 펼쳐지는 평창에서 영기씨와 정순씨의 정이 담긴 따뜻한 밥상을 찾아간다.
▲ 눈 쌓인 백두대간에서 탄광의 역사를 만나다 - 정선 고한읍 만항마을 밥상
지금은 사시사철 아름다운 야생화로 유명한 만항마을은 고한 지역 탄광이 발달했을 때 번성했던 곳으로, 백두대간 1100m에 자리 잡고 있는 높은 마을이다. 광부의 아내로 30년 넘게 살아온 정옥년씨는 동이 트자 밤새 내려 마당 앞에 쌓인 눈을 치운다. 익숙하게 눈을 치우는 옥년씨는 지금 온 눈은 눈도 아니라고 말한다.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처마까지 쌓인 눈 때문에 문도 못 열어 작업을 가는 남편이 애를 먹기 일쑤였다고. 옥년씨는 광부였던 남편의 도시락을 싸주는 게 일상이었다. 탄광에서 작업을 하면 탄가루를 먹어 칼칼한 목 때문에 국물 있는 음식을 찾는 광부들이었기에 언제나 도시락과 함께 냄비를 함께 챙겨 보냈다.
한평생을 광부로 지냈던 만항마을의 터줏대감 김일정씨도 서로의 도시락을 냄비에 담아 물을 붓고 먹었던 섞어찌개는 고된 광부들에게 작은 위로였다며 옛 추억을 떠올린다. 만항마을은 탄광 마을이기도 하지만 백두대간 오지 마을답게 산에 지천으로 나물이 있었다. 그중 눈 속에서 자라 1년 중 가장 먼저 맛볼 수 있다는 눈개승마는 만항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식재료였다. 고기가 귀했던 시절, 닭이라도 맛볼 때면 눈개승마를 넣고 함께 끓여 닭개장의 풍미를 높였다는데~ 뜨거운 국물에 탄가루를 녹이며 맛봤던 만항마을의 애환이 담긴 밥상을 만나본다.
[사진=KBS 제공]
/서경스타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