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선영이 12일 열린 평창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500m 레이스에서 역주하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동생이 못 이룬 꿈을 위한 누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렸다. ‘천재 스케이터’ 고(故) 노진규와 노선영(29·콜핑)의 이야기다.노선영은 12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500m에서 1분58초75를 기록해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다. 개인 최고 기록 1분56초04에도 못 미쳤지만 네 번째 출전한 자신의 올림픽 기록 중에서는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온 국민의 응원 속에 당당하게 ‘팀추월’로 향하는 첫 발걸음도 내밀었다.
2006 토리노 대회부터 3회 연속 올림픽 무대를 밟은 노선영이지만 이번 올림픽 출전기는 유독 험난했다. 애초에 그는 지난 2014년 소치 올림픽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하지만 2년 전 남동생 고(故) 노진규가 골육종 투병 중 세상을 떠나면서 다시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평창에서 함께 뛰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노선영은 지난해 10월 열린 대표 선발전에서 여자스피드스케이팅 대표 선수 김보름(25)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며 올림픽 재도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동생을 약속을 지키는 길에 난관은 계속됐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어처구니없는 행정 착오로 올림픽 출전이 어려워진 것. 노선영은 여자 1,500m 예비 2번으로 개인전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팀추월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개별 종목 출전권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국내 빙상연맹은 이를 파악하지 못했다. 결국 러시아 대표 선수 중 두 명이 출전 승인을 받지 못하면서 극적으로 출전 자격을 획득했으나 이 사건은 노선영에게 큰 상처가 됐다.
노선영은 이후 SNS를 통해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이었기에 모든 것을 포기했지만 많은 분들의 바람 덕분에 저에게 기적처럼 기회가 찾아왔다, 최선을 다하고 후회 없이 대표 생활을 마무리하겠다”는 출사표를 던지고 취재진과의 인터뷰도 자제하면서 훈련에 집중했다.
노선영은 오는 18일 팀추월 준준결승에 출전한다. 1,500m가 노선영의 주종목은 아니지만 오는 팀추월에서도 현실적으로 메달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4년 전 소치 올림픽에서 그가 세운 기록은 3,000m 25위, 팀추월 8위다. 그러나 그는 극적으로 찾아온 기회인 만큼 성실하게 경기에 임하겠다는 계획이다. 1,500m는 노선영이 평창에서 풀어낼 이야기의 시작일 뿐이다.
/강릉=우영탁기자 서지혜기자 wis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