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남쪽 끝 한국인들에게도 찾아온 새해...남극세종과학기지 24시

남극에서 보낸 새해 인사 "몸 건강히 내일 준비하세요"
새벽 5시30분부터 남극의 아침 준비하는 '남극의 셰프'
오전 일과 시간되면 각자 연구 현장으로..."짐 나르기 힘들어"
오후 5시면 대부분 일과 마쳐...당직대원들은 밤새 '안전점검'

서울에서 직선거리로 1만7,240㎞ 떨어진 남극 킹조지섬 세종과학기지. 가족·친지들과 멀리 떨어져 지구 남쪽 끝에 사는 기지 31차 월동대원들에게 설날 명절은 그 누구보다 특별하고 애틋한 날이다. 이번 설이 지나면 곧 남극의 혹독한 겨울이 다가오고, 올해 12월31일까지 기지를 유지하는 일에 전념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극의 설에도 한국처럼 차례를 지낸다. 17차 월동대장으로 활동했던 윤호일 극지연구소장은 “설 아침이 되면 모두 모여 준비한 떡을 나눠먹고, 한국 방향으로 차려놓은 합동 차례상에 절을 한다”며 “차례를 지낸 이후에는 가족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데, 1시간 넘게 수화기를 놓지 않는 대원들이 있을 정도로 가족 생각에 사무친다”고 소개했다.

현재 남극 세종과학기지에 있는 대원들도 새해 인사를 전해왔다. 박하동 총무는 지난 14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진과 문자메시지를 하면서 “대원들은 모두 즐겁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며 “기지 대원들이 지구의 끝에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국민 여러분들도 몸과 마음 건강히 ‘내일’을 준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종과학기지에서 설은 한국처럼 휴일이라 차례를 지낸 후에는 모두 개인 시간을 갖는다. 이들의 평소 생활은 어떨까. 지난달 23일부터 31일까지 남극 세종과학기지에 머무르면서 살펴본 그들의 일상을 공개한다.

남극 세종과학기지 30차 월동대원들이 지난해 설날 한국 방향으로 차례상을 차려놓고 절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극지연구소


◇기지의 아침을 여는 ‘남극의 셰프’

남극 세종과학기지의 아침을 여는 사람은 바로 남극의 셰프, 공민규 대원이다. 새벽 5시30분부터 100인분의 음식을 준비한다. 특별한 즐거움을 찾기가 어려운 기지 생활에서 음식은 매우 중요한 활력의 원천이다. 그래서 조리 대원은 매번 식단에 대한 책임감과 스트레스가 크다. 공 대원은 “기지 대원들의 활동량이 많아서 고기 위주로 식단을 짜고 비타민 공급을 위해 세종 온실의 야채도 주기적으로 제공한다”며 “메뉴 선정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오전 6시, 대부분의 대원들이 활동을 시작해 오전 7시부터 아침 식사를 한다. 한국에서 공수해온 식재료로 만든 음식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면 오전 8시30분 아침 회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된다. 회의 때는 홍순규 대장이 전 대원들을 모아 놓고 지난 밤사이 본국이나 외국 기지에서 온 연락사항을 검토하거나 공유하고, 당일 수행할 업무를 점검한다.

공민규 대원 등 조리대원들이 지난 1월30일(현지시간)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남극 세종과학기지=강광우기자


홍순규(왼쪽 두번째) 남극 세종과학기지 대장 등 대원들이 지난달 30일 남극 세종과학기지 식당에서 아침 회의를 하고 있다. /남극 세종과학기지=강광우기자


◇연구보다 더 힘든 ‘장비 옮기기’

일과 시간이 다가오면 유지반과 연구반의 걸음이 빨라진다. 우선 유지반의 중장비팀은 대원들이 연구에 나갈 수 있도록 조디악과 설상차 등을 준비한다. 그나마 지난달 27일에는 곳곳에서 비가 오고 안개가 자욱했지만 풍속이 1~2m/s로 고무보트를 띄울 수 있는 날이라 정상적인 연구활동이 가능했다. 풍속이 10m/s를 넘어가면 홍 대장은 대원들의 안전을 위해 절대로 고무보트를 띄우지 않는다.

이날 오전에는 채남이·김민철 박사팀과 함께 세종기지에서 남서쪽으로 4km 가량 떨어진 KGL1포인트 연구 현장에 동행했다. 연구의 시작은 장비를 나르는 것부터 시작된다. 조디악으로는 해안가까지 짐을 나를 수 있지만 해안가에서 30~40분을 걸어 가야 하는 가량 떨어진 KGL1포인트까지는 사람이 짐을 날라야 한다. 취재진도 짐을 나르는 것을 도왔는데 자갈길과 미끄러운 눈길이 발목을 위협했고, 강하게 부는 비바람은 시야를 가렸다. 이들은 빙하가 후퇴한 이 지역에서 이산화탄소 방출량이 얼마나 늘었는지, 새로운 생명체들의 천이가 일어나는지 등을 연구했다.


채 박사는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내린 지역의 이산화탄소 농도와 토양의 변화를 관측하고 있다”며 “극지에서 10년당 0.6도씨씩 온도가 증가하고 있어 이에 따르는 환경의 변화를 관측하고 데이터화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오전 연구활동을 마치면 기지로 복귀해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기 위해 기지로 복귀하니 건설 대원들이 과거 생활관동으로 사용했던 기지를 철거하고 있었다. 세종기지는 벌써 지어진 지 30년이 돼 일부 시설들이 상당히 노후화됐다. 이 때문에 지난해 부터 대규모 증축, 리모델링 작업에 들어갔다. 과거 숙소 건물 두 동 중 한 동은 극지연구의 역사박물관으로 개조하고, 나머지 한 동은 너무 노후화돼 철거했다. 그 대신 그 앞에 남극 킹조지섬에서 가장 최신식의 하계연구동을 지었다. 이곳에서는 하계 대원의 숙소와 연구실, 기상관측소 등이 자리잡고 있다.

기지 동쪽에 자리잡은 연구캡슐에서는 애띈 모습의 박서정(24) 하계연구원이 남극 생태 연구를 위해 삿갓조개와 옆새우를 키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박 연구원은 “지구온난화로 빙벽이 녹고 내려 바닷물에 민물이 유입돼 담수화가 되고 산성화가 진행된다”며 “남극 생물들이 거기에 따라 어떤 행동의 변화를 보이고 생리적 반응을 보이는 지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채남이·김민철 박사팀이 지난 1월27일(현지시간)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남서쪽으로 4km 가량 떨어진 KGL1포인트까지 연구 장비를 나르고 있다. /남극 세종과학기지=강광우기자


박서정 하계연구원이 지난 1월27일(현지시간) 남극 세종과학기지 동쪽에 자리잡은 연구캡슐에서 삿갓조개와 옆새우를 키우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남극 세종과학기지=강광우기자


◇특별한 남극 생활 좋지만...“회가 먹고 싶다!”

업무를 마치는 시간은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대부분 오후 5시쯤이다. 오후 6시에 저녁 식사를 하고 생활관 내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카드게임이나 당구 등을 즐기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본다. 휴게실에서 만난 신은총(27) 하계연구원에게 기지 생활은 할 만 하냐고 묻자 “주로 조개 생태를 연구하는 데 남극이라는 특별한 곳에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면서도 “밖에 나가면 활어회를 먹고 싶다”고 미소 지었다. 진희성 발전대원은 “하계 기간 기지에 100여명이 넘게 있는데 월동연구대 17명만 남게 되면 굉장히 외로워진다”고 말했다.

세종기지에는 외국인 연구원도 많다. 극지연구소 소속 연구원들과 세종기지 인근을 연구하고 싶은 다양한 국적의 연구원들이 머무른다. 기지마다 사정은 좀 다르지만 보통 세종기지는 외국인 연구원까지 무료로 숙식을 제공한다. 한국의 연구원이 다른 기지에 갔을 때도 대부분 무료로 숙식을 제공받는다. 브라질에서 온 프란신 엘리아스-피에라(37) 생물학 박사는 “생활이 편하고 사람들이 너무 좋다”면서도 “다만 한국 음식이 안 맞아 힘든 점도 있다”고 말했다.

신은총(왼쪽 두번째) 연구원 등 하계연구원들이 지난달 27일 남극 세종과학기지 하계연구동 휴게실에서 카드놀이를 하며 여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극 세종과학기지=강광우기자


◇대원들이 잠든 사이 당직 대원들은 ‘점검 또 점검’

오후 7시30분에는 홍 대장과 박하동 총무, 박상종 연구반장, 이상순 기지반장이 반장회의를 진행한다. 박 총무는 “반장회의에서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 지, 내일 일정은 어떻게 되는 지를 체크하고 그 다음 날 조회 때 임무를 통보한다”고 설명했다.

월동대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의료다. 보통 의사들은 남극에서의 경력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데다 월급도 낮아 의료대원을 구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이번 31차 월동대에 합류한 조한나 대원은 의료지원을 하지 않을 때도 기지 곳곳을 돌아다니며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한다. 조 대원은 “정말 순수한 호기심 때문에 월동대에 지원하게 됐다”면서 “아직 큰 사고가 없어서 다행인데 겨울이 다가올수록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대원들은 보통 11시면 취침에 들어가는데 예외인 대원들도 있다. 바로 당직 대원이다. 당직의 여러 가지 임무 중 가장 중요한 건 순찰이다. 정해진 시간에 따라 발전기는 과부하가 없이 잘 돌아가는지, 화재 위험은 없는지, 담수화기의 물은 얼지 않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 외국 기지와의 무전과 본국에서 오는 전화도 당직자가 받아서 처리한다. 전자통신 담당 이상훈 대원은 “겨울이 되면 바람도 많이 불고 날씨가 추워 당직 근무 서는 게 더 힘들어진다”며 “그나마 세종기지는 장보고기지보다 덜 고립돼 있어서 나은 편”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오후 11시까지 밝았던 남극의 하늘은 다시 자정이다 지나서야 땅거미가 내려왔다.

/남극 세종과학기지=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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